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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esc를 누르며
고등학교 때 무시무시했던 학생주임 선생님의 별명이 ‘케이지비’(KGB)였습니다. 그 선생님은 학생들이 자기를 너무 무서워해 그런 별명을 붙인 줄 알고 대단히 만족하셨지만, 사실 학생들은 ‘옛소련의 비밀경찰’의 약자로서가 아니라 ‘콩자반’의 약자로 그 별명을 붙여준 것이었습니다. 그 선생님 얼굴에 콩알만한 입체적인 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때부터였습니다. 제가 제 얼굴에 콤플렉스를 가지게 된 게. 저 역시 입 옆에 입체적인 점이 떡하니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1년 전인가 회사 남자 후배 앞에서 선언했습니다. “완벽한 여자가 되기 위해 이 점을 뽑겠다”고. 그러자 후배가 대꾸했습니다. “선배는 이미 완벽한 여자예요.” 그 말에 가슴이 벌렁벌렁 뛰더군요. 친구들은 ‘그 말을 진심으로 믿느냐’ ‘너에게 밥이라도 한끼 뜯어먹으려는 수작’이라고 비웃었지만, 진심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기분이 좋았습니다. 칭찬이 고래도 춤추게 한다면, ‘아부’는 병든 고래도 벌떡 일으켜세우는 것 같더군요.
언론계 선배 중에는 후배들의 ‘직언’이 너무 지겹고 싫다며 자기를 만날 때는 무조건 ‘간언’만 요구하는 선배가 있습니다. “직언은 들을 만큼 들었다. 충신은 겪을 만큼 겪어봤다. 나에게 필요한 건 간신과 간언이다!” 그래서 후배들은 그 선배를 만나면 “선배, 어떻게 그렇게 동안이십니까?” “선배가 이번에 쓰신 글도 한줄 한줄 밑줄을 그으며 읽었습니다”라는 손발이 오그라드는, 진심에도 없는 말을 남발하지만 선배는 “진심 따윈 필요 없다”며 대만족한다고 하네요. 저 역시 요즘엔 매일 “어쩌면 그렇게 미인이십니까?” “어떻게 쓰는 기사마다 모두 주옥과 같습니까?”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면 진심 따위야 뭐 그리 중요할까 싶습니다.
<일반적이지 않은 독자>라는 소설책이 있다고 합니다. 진심 없는 ‘아부’만으로 소통됐던 영국의 여왕이 갑자기 진심 어린 소통을 요구하자, 시종들이 당황하게 됐을 뿐 아니라 ‘이 인간이 노망이 들었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는군요. 그 익살스런 이야기를 <여왕의 진심은 무엇일까>에서 만나보시죠.
김아리 〈esc〉 팀장 a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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