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를 누르며
[매거진 esc] esc를 누르며
기자들이 설렁탕에 밥 말아 먹는 것 이상으로 좋아하는 게 맥주에 양주나 소주를 말아 먹는 겁니다. 이른바 ‘폭탄주’. 맥주를 말지 않은 위스키는 먹어본 적도 없고, 와인조차도 그냥 먹은 와인보다 맥주에 만 와인을 더 많이 먹었으니 더 설명해서 무엇하겠습니까. 처음엔 폭탄주라면 절레절레 고개를 젓던 여기자 중에는 아기를 낳고 가장 먼저 생각난 게 미역국이 아니라 시원한 폭탄주 한잔이었다는 사람도 있고, 부부가 기자인 동료 중에는 부부싸움 뒤엔 꼭 폭탄주로 화해를 한다는 사람도 있는 걸 보면, 기자의 삶에서 폭탄주는 단순한 술 이상임에 틀림없습니다.
제가 겪은 잊을 수 없는 폭탄주의 기억은 10년 전, 경찰 수습기자로 일하던 한겨울에 벌어진 일입니다. 그날 경찰팀 팀장은 수습기자들에게 폭탄주를 10잔씩 돌리고 새벽 2시에 경찰서로 되돌려보냈습니다. (수습기자들은 경찰서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게 의무입니다.) 남대문경찰서로 돌아와 기자실에서 잠을 청했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베개와 머리가 찰싹 달라붙어 떨어지질 않는 겁니다. 이유인즉슨, 밤새 오바이트를 하면서 자는 바람에 토사물이 머리와 베개를 덮쳤는데 한겨울이라 방바닥이 워낙 뜨끈뜨끈하다 보니 토사물과 머리카락들이 뒤엉켜 ‘전’이 부쳐진 상태가 된 것이었습니다. ‘대략난감’한 상황에 마침 선배 기자가 당장 경찰청으로 달려오라고 전화 호통을 치네요. 하지만 베개를 머리에 달고 갈 수는 없는 노릇. 머리카락을 뭉텅이로 뽑아내는 고통 끝에 베개를 떼어내고 달려갔습니다. 하지만 머리에 오물이 붙은 몰골을 보자, 선배는 “어떻게 이 지경으로 올 수 있냐”며 다시 머리를 빨고 올 것을 지시했습니다. 남대문경찰서로 돌아온 저는 더운물이 나오는 곳을 찾은 결과, 대걸레를 빠는 수돗가에서 머리를 빨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쨌든 기자 생활 10년 만에 처음으로 말지 않은 순수한 위스키 시음에 도전해 보았습니다. 그것도 비싸고 고급스럽기로 유명한 ‘싱글몰트 위스키’에. 그 결과는 esc 요리기사 <진짜 위스키 ‘싱글몰트’의 진수를 가린다>에서 만나 보시겠습니다.
김아리 〈esc〉 팀장 ari@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