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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esc를 누르며
영화배우 박중훈씨가 <씨네21>에 연재한 회고록에서 비가 오는 날은 왠지 기분이 좋다고 고백했습니다. 그 이유인즉슨, 영화 <라디오 스타>에서 ‘비와 당신’을 불렀는데 작사료나 작곡료에 비교할 수 없게 미미하지만 노래방에서 사람들이 그 노래를 부르면 ‘가창료’라는 게 들어오는데 비가 오는 날이면 사람들이 그 노래를 많이 부르기 때문에 가창료가 쏠쏠하게 들어오기 때문이랍니다. 특히 장마철에는 더 그렇다네요. 그래서 이제 빗방울이 ‘돈방울’로 보인다나요.
이렇게 유머러스한 박중훈씨가 한번은 사석에서 진지하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과거 불미스러운 일로 감옥에 갔을 때 소년범들을 많이 만났는데 그게 자신의 인생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하더군요. 그 이유인즉슨, 자신은 경제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유복한 가정환경에서 자라서 세상의 모든 가정이 자신처럼 화목하고 웃음소리가 넘쳐나는 줄 알았는데, 소년범들을 만나보니 세상에 그렇게 많은 이혼 가정과 폭력 가정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그래서 나중에 돈을 모아 그런 친구들을 위한 학교를 세우는 게 꿈이 됐다고 하더군요. 그러자 그 옆에 있던 영화 관계자들이 다들 ‘허걱’ 했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이번이 3번째 결혼인데?” 그러자 “야, 우리 아버지 앞에서 명함도 꺼내지 마, 우리 아버지는 이번이 7번째야!”
박중훈씨가 그날 술자리의 대화를 기억할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esc〉에 실린 소년원 친구들의 이야기를 보고 몇년 전 그날 대화가 떠올랐습니다. 가정에서 방치돼 자기도 모르게 혹은 의도적인 반항으로 범죄의 길목에 들어서고, 다시 사회로 돌아와도 아무도 반겨주지 않는 그 아이들은 어떻게 미래를 설계하고 어디서 희망을 구할까요?
그런데 이번 기사는 그들을 위한 작지만 소중한 단초를 알려줍니다. 기사 내용인즉슨, 소년원에서 아이들에게 카메라를 쥐여주며 사진 찍는 법을 가르쳤는데, 아이들이 사진을 찍으며 웃음을 되찾고 꿈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주 작은 관심만 기울여주고, 아주 작은 손길만 내밀어주었을 뿐인데 달라지는 아이들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카메라, 소년들도 춤추게 만들었다>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김아리 〈esc〉 팀장 a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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