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를 누르며
[매거진 esc] esc를 누르며
손씻기가 생존을 위한 절체절명의 과제가 된 요즘 신문사 화장실 거울에는 올바른 손씻기법이 붙어 있습니다. 내용을 쭉 보다가 맨 아래 ‘범국민손씻기운동본부 제공’이라고 적혀 있는 걸 봤습니다.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손씻기가 중요한 건 알겠지만 ‘범국민’, ‘운동본부’ 이런 중후장대한 단어와 어울려 있으니 오히려 농담처럼 들리더군요. 궁금해서 검색창에 ‘범국민손씻기운동본부’를 쳐보니 본부 소개 중 한 줄에 ‘범국민손씻기운동 확산으로 국가 이미지 향상’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푸하! 흠, 죄송합니다. 그러니까 열심히 손 닦으면 애국자 되는 거로군요.
생각해 보면 손씻기든, 발씻기든, 가족소풍이든 보통 시민이 어떤 사소한 행동을 해도 대한민국에서 그것은 곧 국가 이미지와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커버스토리에서 언급됐듯이 최근 자전거 열풍에 힘입어 지자체들이 모여 만든 ‘전국자전거도시협의회’도 세계적 환경도시 개발이라는 ‘국가 이미지 제고’와 관련 있어 보입니다. 서울광장과 함께 대한민국의 대표 광장으로 군림할 광화문광장은 말할 것도 없이 국가 이미지와 직결되겠죠. 한국을 외국에 소개하는 관광책자에 분명히 들어갈 수도 서울의 랜드마크가 될 테니까요.
그렇다면 이 광장으로 대변될 국가 이미지는 어떤 걸까요? 서울광장이고 광화문광장이고 바닥에서 내뿜어지는 수직분수와 물을 맞으며 뛰어노는 아이들 이외에는 생각나는 게 없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디자인면 기사의 대표 사진도 딱 그 모습입니다. 그것 말고는 시민들이 광장에 뛰어들어 자발적으로 놀 수 있는 게 없거든요. 나머지는 ‘협회’나 ‘본부’ 같은 데서 보여주는 전시 보고, 들려주는 음악을 듣는 게 광장에서 할 수 있는 전부니까요.
밀실 어쩌구, 민주주의 어쩌구 하며 서울시나 정부의 광장 꾸미기에 반대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거 ‘국가 이미지!’인데 촌스럽지는 않아야 할 거 아닙니까. 연예인 사진 보고 흉내내면서 한껏 찍어발랐지만 보기 차마 민망한 대학 신입생 얼굴 같은 이 광장들, 이미지 제고 되겠습니까?
김은형 〈esc〉 팀장 dmsgud@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