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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우면 지는 거다

등록 2009-09-09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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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esc를 누르며




이러다간 교통신호만 안 지켜도 기소당하지 않을까 걱정스러운 기소 천지 사회에서 오랜만에 ‘반가운(?)’ 기소 소식을 들었습니다. 외국인에게 인종차별적 발언을 한 한국인이 약식기소됐죠. 물론 그 외국인은 서구에서 온 백인이 아니라 아시아 국가 출신이었습니다. 기소된 장본인이야 ‘왜 나만 가지고 그래’ 억울하겠지만 이제야 첫 단추가 제대로 끼워진 듯합니다. 외국인의 한국인에 대한 비하 발언에는, 그것이 아무리 작은 농담이라도 일사불란하게 격한 분노를 일으키면서도 우리 주변에 만연한 가해자적 시선에는 ‘뭘 그런 걸 가지고’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리는 건 결국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아전인수식 해석과 다를 게 전혀 없잖아요.

지난주 엔터테인먼트면(9월3일치)에서 매력 만점이라고 추어올렸던 투피엠(2PM)의 멤버 재범이 출국을 위해 공항을 빠져나가는 사진이 이 글을 쓰는 시점에 막 인터넷 뉴스에 올랐습니다. 수년 전 개인 홈피에 올렸다는 ‘한국 싫어’ 발언 폭로에서 출국까지 불과 사흘 걸렸습니다. 지금 당장 어느 행성이 지구를 향해 돌진해 온다 해도 이처럼 일사불란할까 싶습니다.

지금도 충분히 부글부글 끓는 재범 발언 논란에 숟가락 하나 더 얹어 뭐 하겠습니까만 며칠 전 인종차별 발언 기소를 보면서 느꼈던 안도감이 완전히 쪼그라들더군요. 어떤 일의 가해자가 되는 건 나쁜 일이지만 가해자로서 죄책감을 깨닫는 건 그만큼 각성된 자아를 획득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반면 일방적인 피해의식은 열등의식과 맞물려 종종 이성을 마비시키고 가공할 괴력으로 주변의 모든 차이와 디테일들을 빨아들입니다. 특정 시대 대중들의 욕망의 총아인 인기 스타, 아이돌이 뜨고 지는 모습을 한 편의 초스피드 단막극장으로 보면서 자신보다 우월하다고 느끼는 것에 대한 선망과 그 뒷면의 배타성, 호감 뒤에 숨겨진 피해의식이 여전히 질기게도 우리의 발목을 부여잡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러우면 지는 거다’라는 농담이 문득 떠오릅니다. 문제의 인물은 내쫓았지만 진 게임이라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네요.

김은형 〈esc〉 팀장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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