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ESC

웃음의 죄사함

등록 2009-09-02 19:52

esc를 누르며
esc를 누르며
[매거진 esc] esc를 누르며




‘웃음과 감동.’ 단어 조합의 클리셰 중에 가장 맘에 들지 않는 겁니다. 가장 식상한 코미디영화 카피이기도 하죠. 여기에는 웃음의 가치에 대한 은근한 폄하가 있습니다. ‘그저’ 웃기만 하면 허탈하다, 무의미하다, 남는 게 없다 등등. 그래서 찧고 까불던 코미디 주인공들은 영화가 끝날 무렵 눈물 뚝뚝 흘리며 회개하고 진지한 사람으로 거듭나곤 합니다.

하지만 전 웃음의 죄사함 같은 감동에 반대 한 표입니다. 웃는 게 죕니까? 제가 수많은 냉담자들의 외면(!)을 무릅쓰고 <티브이엔>을 좋아했던 이유도 이런 반감과 연관돼 있습니다. 물론 초창기 티브이엔은 선정적이다, 독하다 같은 부정적 평가 일색이었지만 분명히 이 채널에는 초기부터 지금까지를 흔들림 없이 관통하는 순수함이 있습니다. ‘쓰리벌떡’ 채널에 웬 순수함이냐고요? 하얀 면스커트를 입은 소녀가 자전거 타고 가는 광고 이미지가 아니라, ‘전혀 다른 것이 섞이지 아니함’이라는 사전적 의미의 순수함 말입니다. 다른 의도나 취지-예를 들면 ‘웃음과 감동’ 따위-가 섞이지 않은 100% 재미를 향한 열정이라고 할까요?

제가 티브이엔을 ‘비범한’ 채널이라고 느끼게 된 건 아쉽게도 시즌1로 막을 내린 <폰>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였습니다. 스튜디오에 전화기 하나 갖다 놓고 한 시간 내내 말 그대로 ‘장난전화질’만 해대는 이 프로그램이 빨리 종영한 건 당연해 보입니다. 점잖게 나라 걱정만 하는 어른들이 봤다가는 티브이를 ‘뽀개 버리고’ 싶을 만큼 한심한 프로잖아요. 하지만 저는 킬킬거리면서도 놀랐습니다. 재미를 위해서는 진짜 별짓을 다하는 사람들이구나, 언젠가 일 내겠다, 그런 느낌이었죠. 초창기 ‘선정성=재미’라는 단순하고 아마추어적인 감각을 뛰어넘어 ‘남녀 탐구생활’처럼 앞서가는 재미를 만들어낸 것은 이처럼 오로지 재미를 위해 별짓 다하는 시도 끝에 나온 결과물이겠죠.

하지만 ‘공감대’를 지향한다는 지금의 티브이엔이 문어발식 공감대로 가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보고 싶은 건 즐거운 채널이지, 착한 채널은 아니거든요.

김은형 〈esc〉 팀장 dmsgud@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ESC 많이 보는 기사

부드럽고도 쫄깃한 식감…살코기와 달라 별미인 양곰탕 [ESC] 1.

부드럽고도 쫄깃한 식감…살코기와 달라 별미인 양곰탕 [ESC]

눈꽃 여행하고 순부두 한끼 할래요, ‘왈츠의 왕’ 고향 여행 갈까요? [ESC] 2.

눈꽃 여행하고 순부두 한끼 할래요, ‘왈츠의 왕’ 고향 여행 갈까요? [ESC]

[ESC] 슬퍼서 우는 ‘눈물’의 과학 3.

[ESC] 슬퍼서 우는 ‘눈물’의 과학

윤심덕이 부른 ‘한국 최초 캐럴’…음반 가격, 알면 놀랄 걸 [ESC] 4.

윤심덕이 부른 ‘한국 최초 캐럴’…음반 가격, 알면 놀랄 걸 [ESC]

[ESC] 오늘도 냠냠냠: 13화 행촌동 대성집 5.

[ESC] 오늘도 냠냠냠: 13화 행촌동 대성집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