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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참 치사해집니다. 겨우 이런 걸로 내가 왜 치사하게 고민할까 생각하는 게 더 치사해집니다. 바로 돈 때문입니다. 그것도 몇 십만원, 몇 백만원이 아니라 치사하게 밥 한끼 값, 술 한잔 값 때문입니다.
이번주 ‘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에 들어온 고민 메일을 보면서 십분 공감했습니다. 그깟 밥 한끼 값 때문에 미워하게 된 사람들, 많거든요. 내가 한번 계산하면 네가 한번 돈 내는 이심전심, 심심상인, 염화미소 되면 좋으련만 잘 안 됩니다. 월급도 더 많이 받으면서 늘 “커피는 내가 살게” 선수치는 친구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열번이면 열번 모두 선배에게 얻어먹는 걸 당연시하는 후배도 얄밉습니다.
후배들과는 꼭 더치페이하면서 더 위 선배한테는 꼭 얻어먹는 선배도 얄밉긴 마찬가지입니다. 한번은 그런 선배를 골탕 먹이자 소심한 후배들끼리 작당을 하고 식당에 가서 와인 한병 시켰다가 쿨하게 “다같이 (술값) 만원씩 내자”고 하는 선배의 말에 “예~” 순한 양처럼 돈을 내고는 괜히 씩씩거렸던 적도 있습니다. 열받지만 돈 이야기 차마 하기 힘들어 속을 끓이고, 이렇게 속 끓이는 모습이 못나 보여 더 열받죠. 제 친구는 학창시절 남친에게 친구들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학생식당으로 가는 것으로도 모자라 자기 식권만 달랑 사는 남친을 보고 이별을 결심한 적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친구, 남친이 남편 됐습니다. “너같이 치사한 남자랑 더 이상 못 만나겠다” 통보한 자리에서 남친은 뜻밖에 웃으며 “뭐, 그런 걸로 헤어지냐, 진짜 돈이 없어서 그렇다”고 덤덤하게 대답했답니다. “왜 알바도 안 하냐”는 질문에 “어렵더라도 대학생활은 책을 읽거나 나를 위해 쓰고 싶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스르르 녹았습니다.
‘쪼잔한’ 돈 문제로 답 안 나오는 스트레스 받는 분들, 임경선씨의 조언에 귀 기울여 보시길. 꼬이는 질문일수록 해답은 단순 명쾌할 수 있답니다.
김은형 〈esc〉 팀장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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