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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esc를 누르며
어릴 적 스케이트에 관한 추억, 아니 미스터리가 있습니다. 초등학교 때 겨울이 되면 무조건 스케이트장에 가야 했습니다. 지금처럼 적당히 따뜻한 실내링크도 아닌 동네 얼린 논바닥이었죠. 지금보다 겨울바람은 매서웠고 스케이트장까지 가려면 한 30분 걸어야 했으며, 더욱이 운동에는 젬병이었던 터라 죽기보다 싫었어요. 그래서 스케이트장에 가면 비닐하우스에서 파는 떡볶이 100원어치를 사먹으며 시간을 때우다가 집에 오는 날이 더 많았습니다.
항상 이상했습니다. 딸내미의 윤택한 과외 생활에 별 관심도 없어 보이는 엄마가 왜 스케이트에는 맹렬하게 집착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당시 어느 집이나 있던 캐럴 음반 표지의 박혜령 어린이가 신고 있는 새하얀 스케이트라도 사주든가. 언니 둘이 신다 버린 다 낡은 스케이트를 척 안겨주며 어여 나가라고 하던 엄마는 도대체 무슨 생각인가 늘 이해가 안 됐죠.
나이 들어보니 그건 엄마, 그리고 대다수 형편 빠듯한 집안 엄마들이 유일하게 가졌던 자식에 대한 허영심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것저것 해줄 돈은 별로 없지만 궁상맞게 키운다는 시선이나 스스로의 안타까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한 방법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스케이트를 타고 뱅글뱅글 도는 모습만 봐도 우리 아이는 좀 특별하게 키웠다는 위로가 된 걸까요? 물론 저는 뱅글뱅글 돌기는커녕 한 시간 배운 고나무 기자도 해낸 코너링조차 제대로 못해 냈지만요.
생일상에 알록달록 꽃 달린 케이크 하나만 올려져 있어도 감격에 벅차던 시절 얘기죠. 이렇게 말하니까 제가 엄청 늙은 것 같네요. 요즘에 생일날 엄마나 아빠가 케이크를 사왔다고 감동해 폴짝폴짝 뛸 어린이가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만큼 엄마들의 허영심 채우기도 쉽지 않아졌죠. 쉽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평범한 직장인 가정이 자식을 키우며 적당히 자기만족을 하는 것도 이제 불가능해 보입니다. 이럴 땐 무엇으로 위로를 해야 할까요?
김은형 〈esc〉 팀장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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