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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esc를 누르며
얼마 전 후배와 이런 주제로 토론을 했습니다. ‘못생긴 사람이 연애를 더 잘한다.’ 다분히 외모차별적인 뉘앙스가 있지만, 그래도 못생긴 사람이 연애를 못한다는 것보다는 덜 차별적이지 않습니까? 후배는 오래전 여기자들만 10명 정도 함께 출장을 가게 됐답니다. 일이 끝나고 술 한잔 하면서 여자들끼리의 질펀한 연애담이 시작됐는데, 관찰자 입장에서 미모가 뛰어난 사람들은 뜻밖에도 그다지 내놓을 게 없는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다채로운 연애편력을 가지고 있더랍니다.
10명의 이야기가 신뢰도 있는 표본일 수도 없고, 해석이야 다양할 수 있겠지만, 저는 노력하는 사람과 노력하지 않는 사람의 차이라고 참으로 건전한 분석을 했습니다. <섹스 앤 더 시티>의 원작자인 캔더스 부슈널이 저의 학설을 뒷받침했더군요. 이번주 ‘하우 투 스킨십’(8면)을 보니 사랑은 저절로 넝쿨째 들어오는 호박이 아니다, 노력을 해야 한다고 부슈널이 말했다지요. 사랑을 국민의 기본권처럼 주장하는 드라마와 책들이 넘쳐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는 말입니다. 고로 상대방에게 호감을 줄 수 있는 외모의 소유자가 소개팅이나 연애에 성공할 확률은 높겠지만, 그것은 그야말로 확률에 불과하다는 것, 확률 계산이 아니라 행동으로 나서야 서 말의 구슬을 꿴다는 이야기겠지요.
물론 사랑이나 연애는 ‘보캐뷸러리 22000’에 도전하는 것과는 달라서 노력한 만큼 늘 성과를 얻는 것은 아닙니다. 오랜만에 큰 소리로 웃으면서 본 영화 <미쓰 홍당무>의 양미숙 선생은 사랑하는 사람을 쟁취하고자 밥 먹을 시간도, 잠잘 시간도 없이 뛰어다닙니다. 하지만 번지수가 틀린 노력은 ‘삽질’로 판명납니다. 그러나 양 선생, 다시 도전합니다. 그녀 몰래 이사간 피부과의 의사에게 말이죠. 이번 도전 역시 뭐 대략 안습 분위기이긴 합니다만 7전8기라고 언젠가는 멋진 연애담이 생기지 않겠어요? 외로움에 치를 떠는 신사숙녀 여러분, 궁상을 떨치고 일어나 부지런히 ‘뻐꾸기’ 날리는 이 가을이 되길….
김은형 〈esc〉 팀장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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