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를 누르며
[매거진 esc] esc를 누르며
‘밥벌이의 지겨움!’ 소설가 김훈의 문장에 이렇게 대구를 달고 싶은 요즘입니다. ‘제목 달기의 괴로움!’ 기사 쓰기에서 제목 달기로 주무가 바뀐 다음부터 마감 때면 ‘낚시질’ 궁리에 머리에서 김이 납니다. 인터넷에서 ‘낚시질’이란 단어는 대체로 나쁜 어감으로 쓰이긴 합니다만, 편집자가 좋은 낚시꾼이 돼야 파닥거리는 싱싱한 기사들이 독자 여러분의 밥상까지 무사 도착하지 않겠습니까?
가만 보니 제목 달기는 이번 표지 기사인 만두와 닮았군요. 제아무리 맛있는 소라도 적당량을 넘어 만두피 안에 억지로 구겨넣었다가는 삶거나 찌면서 속 터진 만두부인 돼 버립니다. 제목 역시 아무리 근사하고 재치있는 단어를 총동원해도 간결한 맛 없이 줄줄이 흘려넣으면 그야말로 육즙 터진 소룡포 꼴 나는 거지요. 활자들이 넘쳐나는 이 바쁜 세상에 제목 읽다 지쳐버리면 기사까지 눈이 갈 리 없을테니까요. 제목 달기의 귀재였던 전임 팀장이 남기고 떠난 편집 비기 ‘10·10·10 훈련법’(헤드라인을 10자 이내로, 10가지 종류를 뽑아서 10번 고쳐 써보라)으로 부지런히 연마하고 있지만 제목의 달인으로 가는 길은 멀게만 느껴집니다.
이번주 <한겨레>의 지면 개편에 발맞춰 〈esc〉도 살짝 새단장을 했습니다. 몇가지 연재 칼럼이 자리 이동을 했고, 사랑을 듬뿍 받았던 ‘사용불가 설명서’가 시즌 2를 시작하며 ‘적용불가 설명서’로 변신했습니다. 기사에 소개됐듯이 당연하다고만 여겼던 세상의 모든 규칙을 흔들어 보고 뒤집어 보는 코너입니다. 뭐, 상식적으로 적용 불가할 것만 같았던 규칙과 법규들이 하나씩 하나씩 적용 가능으로 바뀌고 있는 요즘 세상의 트렌드를 민첩하게 간파해 만든 코너는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도 거침없이 대담하고 황당할 만큼 독창적인 규칙들을 부지런히 창안하고 있는 의원님들과 정책 입안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립니다. 잘하시면 영화표 열 장 드린다니까요.
김은형 〈esc〉 팀장 dmsgud@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