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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망의 반전

등록 2008-10-22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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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로망의 여행지는 어디입니까?’ 지중해 섬 여행 기사를 시작하며 남종영 기자가 이렇게 물었군요. ‘쿨하다’처럼 본래의 뜻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의미를 품으면서 유행어처럼 자리잡은 이 말은 꿈이라는 단어보다 낭만적이고 판타지라는 말보다 달콤해서 자주 꺼내 쓰는 단어인 것 같습니다.

아무튼 저 역시 아주 오래전 김화영의 산문집 <행복의 충격>을 읽고서 지중해에 대한 로망을 품게 됐죠. ‘지중해, 내 푸른 영혼’이라는 소제부터 열아홉살 청년에게 로망을 주기에는 충분한 낭만이 서려 있으니까요. 하여 몇 해 전 큰맘 먹고 로망을 현실로 만들고자 지중해 섬으로 여행을 갔습니다. 새하얀 건물들 사이로 미로처럼 좁고 복잡한 골목과 층계들, 흰색 건물들을 샌드위치의 식빵처럼 포근하게 위아래로 감싸고 있는 푸른 하늘과 지중해가 진짜 그곳에 서 있으면서도 이게 영화가 아닐까 싶었죠. 흰색 포플린 드레스를 입고 자전거를 탄 소녀의 등장을 기다리고 있을 찰나, 반전이 시작됐습니다. 샤방샤방한 꽃냄새와 플루트 연주 가득할 것만 같은 이곳에 오후쯤부터 댄스음악이 쩌렁쩌렁 울려퍼지더니 바닷가 바에서 수영복 차림의 수많은 청춘들이 맥주를 퍼마시며 미친 듯 댄스 삼매경에 빠졌습니다. 구릿빛으로 적당히 태운 몸을 마음껏 과시하며 분방하게 흔들어대는 모습을 보면서 순수의 극한을 찾아온 저의 환상은 깨졌지만, 흠…사실 그 역시 썩 즐거웠던 체험이었다고 할까요?

근래 제 로망의 여행지는 아이슬란드였습니다. 지중해와는 정반대로 삭막하고 거대한 땅에서 날카로운 바람을 얼굴에 찰싹찰싹 맞아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인터넷에서 ‘아이슬란드 관광 특수’라는 제목이 눈에 번쩍 띄었습니다. 금융위기로 화폐가치가 폭락하면서 어마어마하던 물가가 싸졌기 때문이라지요. 순간 가슴이 뛰었습니다. 이 기회에 로망을 실현해 봐? 하지만 반전도 순식간에 왔죠. ‘펀드 몰빵’ 제 통장에는 ‘아이슬란드 이미 대여섯 번은 다녀온 거나 마찬가지야, 이 사람아’라는 뜻의 숫자가 찍혀 있던 겁니다.

김은형 〈esc〉 팀장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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