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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esc를 누르며
10월 말 도쿄로 가려던, 늦은 여름휴가를 전격 취소했습니다. 지난 9월 가나자와 여행 취재를 갔을 때 엔화 환율이 1000원을 넘어간 것에 눈이 휘둥그레졌는데, 요새는 1300원, 1400원을 휙휙 넘나드니 별수 있겠습니까?
기껏해야 2, 3년에 한 번, 일주일을 채우지도 못하는 외국여행을 가면서 환율 계산까지 해본 적은 없는 것 같은데, 요새는 출근하면 습관처럼 달러 환율 엔화 환율을 확인하니, 스스로 마치 애널리스트라도 된 것처럼 순간 우쭐해지기도 하는군요. 사실 걱정하는 게 단순히 여행 경비만은 아닙니다.
지금 전, 미국발 금융위기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진짜예요.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가 났을 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한국은행 총재 이름도 모르던 제가 버냉키의 발언을 예의 주시하고 있지요. 전날 본 드라마, 연예인 이야기로 꽃피우던 점심시간에 에프아르비(FRB)의 금리 인하와 신용 경색에 대한 토론을 나눕니다. 제가 왜 갑자기 이렇게 유식해진 걸까요? 만화 <사루비아>를 보시면 압니다.
작년 이맘때부터 주변이 점점 유식해진 것 같습니다. 〈esc〉 팀의 재테크 전문가인 아무개 기자는 “중국 전인대회 결과 긴축재정을 쓰게 되면, 중국 증시가 조정될 가능성이 크다”는 둥의 폼나는 분석을 내놓는가 하면 재테크라고는 보통예금통장이 전부인 한 친구는 “유가 상승에 따른 물가 상승과 실물경제 위축”을 예견하기도 했지요. 대중소설만 열심히 읽어대던 책 칼럼니스트는 <2008 경제 대전망>을 소개하질 않나, 급기야 <사루비아> 오 대리처럼 다같이 ‘리먼브러더스~’를 절규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렇게 세계경제와 함께 호흡하게 된 제 주머니 사정은 어떨까요? 코스피지수가 1900선을 끊었을 때 적금 탄 거 과감하게 펀드에 쏟았습니다. 전인대가 어쩌구, 긴축재정이 저쩌구 했던 그 기자는 코스피지수 2000 직전에 불나방처럼 뛰어들었다지요? 오 대리와 끌어안고 울고 싶습니다. 세계경제 몰라도 맘 편하게 사는 세상, 돌아올까요?
김은형 〈esc〉 팀장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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