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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뿔났다> 마지막회를 보면서 눈물을 철철 흘렸습니다. 슬플 것도 없는 엔딩이었는데 이 드라마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게 슬펐습니다. 처음부터 열심히 본 건 아니었어요. 드라마 초반엔 ‘부모님 말씀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하란 이야기지?’라고 단정하며 건성건성 봤습니다. 그런데 중반을 넘어가면서 몰두하기 시작했죠. ‘너 어제 그거 봤어’에서 최지은 기자가 말한 것처럼 보는 내내 누구의 입장을 취할 것인가 고민했습니다. 한자(김혜자)의 가출, 아니 휴가(!)에 공감하다가도 한자의 자식들처럼 집나간 엄마가 한없이 얄밉기도 했으니까요.
<엄뿔>을 보면서 감동한 건 무엇보다 김수현이라는 작가였습니다. 어르신에게 외람된 표현이겠지만 환갑 넘은 사람도 성장한다는 걸 이 드라마를 보면서 깨달았습니다. 요컨대 <엄뿔>은 ‘요즘 애들 왜 이래’라고 꾸짖는 어른의 드라마가 아니라 진짜 어른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이야기하는 어른의 드라마였습니다. <사랑이 뭐길래>의 대발이 아버지가 말 한마디로 하늘에 나는 새까지는 아니지만 집 안을 나는 파리 정도는 거뜬히 떨어뜨릴 기세의 권위적인 가부장이었다면 이 드라마의 영수 아버지는 서투르지만 기꺼이 엄마의 빈 자리를 메우는 요즘 아버지로 변모했습니다. 세상이 바뀌었으니 드라마 속 인물도 바뀌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른바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들에는 지금 세상이 19세기라고 주장하는 어머니와 아버지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지만 텔레비전을 꺼도 이런 드라마는 끌 수가 없군요. 아니 영화인가요? 지구를 거꾸로 돌려 과거의 시간으로 돌아간 슈퍼맨이 스크린 밖에서 환생한 것 같습니다. 영화에서는 단 하루의 시간을 돌리느라 그렇게 애를 썼는데 10년을 되돌리자면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필요할까요? 슈퍼맨에게 <엄마가 뿔났다> 다시 보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괜한 고생하지 말고 근사한 어른이 되보면 어떻겠냐구요.
김은형/ <한겨레> esc 팀장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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