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를 누르며
[매거진 esc] esc를 누르며
관광객한테 총질을 하다니요.
5년 전 홀로 여행했던 네팔이 생각납니다. 마오주의 반군의 잦은 출몰로 전국엔 계엄령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삼엄했습니다. 총격전이 벌어져 어디선가 수십명이 죽었다는 뉴스도 터져나왔습니다. 그래도 태평하게 돌아다녔습니다. 정부군이든 반군이든, 해외 여행객들에겐 결코 총질을 하지 않는다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금강산 관광객들의 그 믿음은 네팔에서의 저보다 몇 배는 컸으리라 짐작됩니다. 한데 오발탄도 아닌 조준사격이었습니다. 박왕자씨는 두 방에 즉사했습니다. 이게 다 이명박 때문이야, 라고 우기고 싶지만 그렇게 치사한 짓은 하지 않겠습니다. 이건 명백히 북한군의 잘못으로 보입니다.
저는 조금 착잡해졌습니다. 남북관계가 얼어붙고 반대세력을 향한 정부의 까칠한 반전이 시작되겠구나, 따위의 거창한 나라 근심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소시민적 편집자’의 처지에서 한 가지 이런 걱정이 들었습니다. “정대세 선수 칼럼에 악랄한 댓글이 더 붙겠구나.”
북한에 트집을 잡을 일만 생기면 증오심을 더욱더 부채질하기 위해 악을 쓰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닥치는 대로 ‘관계자’를 만들어 욕설을 퍼붓곤 합니다. 울타리를 넓게 치면 북한 축구대표팀 선수인 정대세 선수도 ‘관계자 명단’에 오르는 셈이지요.
정대세 선수는 칼럼 연재(8면 참조)를 시작할 때 〈esc〉에 한 가지 단도리를 했습니다. “정치나 이데올로기에 관한 한 결코 쓰지 않겠다”고 말입니다. 〈esc〉 역시 골치 아픈 이야기 말고 발랄하고 재밌는 이야기로 지면을 채우자고 화답했습니다.
아 참, 그런데 요즘 일본 문부과학성의 ‘독도 교육’ 문제로 시끄럽습니다. 때를 맞춘 것도 아닌데, 정대세 선수는 8월 2일날 일본 제이(J)리그 대표 올스타 선수로 케이(K)리그 대표선수들과 맞선다고 합니다. “이번엔 쪽바리 편에 섰냐”는 황당한 댓글이 달릴 지도 모르겠네요. 제 걱정도 참 팔자입니다.
고경태/ <한겨레> 매거진팀장 k21@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