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를 누르며
[매거진 Esc] esc를 누르며
소파와 리모컨!
게으른 저에게 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집안의 거실 소파에 앉으면 자동으로 텔레비전 리모컨을 쥐게 되기 때문입니다. 마치 ‘파블로프의 개’와 같은 조건반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눕거나 앉아 멍청하게 리모컨으로 채널 이곳저곳을 누르면서 시간을 질질 흘립니다.
여기엔 거실 구조도 한몫 합니다. 소파 반대편엔 대개 티브이가 자리잡습니다. 그 옆에는 컴퓨터 책상이나 화분 몇 개가 놓이기 마련이고요. 책을 읽거나 가족끼리 대화를 나누기엔 삭막한 환경입니다. 요즘 이러한 거실의 기본 구조를 바꾸려는 이들이 늘고 있습니다. 북카페처럼 꾸미자는 거지요. 벽면엔 책장을 들여놓고, 한가운데엔 식탁을 놓아 차를 마시며 책도 보는 탐구적인 공간으로 말입니다. 21세기 주택 거실의 새로운 진화입니다.
저도 그렇게 해 볼까 생각 중인데, 모르겠습니다. 가족끼리 대화를 많이 해야 한다는 당위가 강박은 아닐까요? 자질구레한 대화까지 깊게 나누다 보면 오히려 피곤해져 부부싸움만 늘지 않을까요? 직장에서 탐구하다 지쳐 돌아왔는데, 휴식해야 할 집 거실에서도 탐구적 분위기에 숨막히란 말입니까? 괜히 궤변을 늘어놓았지만, 티브이는 꼭 다른 방으로 치우고 싶습니다. 그래야 덜 멍청해질 것 같으니까요.
저는 이번 호 커버스토리를 준비하며 문득 이명박 대통령의 서재가 궁금해졌습니다. 서재는 주인이 살아온 삶의 궤적과 의식을 고스란히 반영한다고 합니다. 도대체 어떤 책들을 읽었길래 계속 이러시는 걸까요?
다음 대통령 선거 때는 후보들간의 독서토론을 생중계했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의 서재를 대중들에게 공개하며, 인생에 영향을 준 책도 소개하고(오, 김구 할아버지 책은 이제 노 땡큐!) 몇몇 민감한 책들을 놓고는 논쟁도 주고받는 거지요. 다음엔 교양있는 대통령을 뽑았으면 좋겠습니다.
고경태/ <한겨레> 매거진팀장 k21@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