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를 누르며
[매거진 Esc] Esc를 누르며
종교를 바꿔야겠습니다.
이왕이면 ‘유교’로 바꿔야겠습니다. 집에 있는 아이들에게 ‘삼강오륜’을 달달 외우게 하면 좋겠습니다. 예의범절과 도덕의 기본에 관해 회초리를 들고 처음부터 가르치는 겁니다. 찍소리 못 하고 순종만 하도록 말입니다. 우리 집 아이들의 오만방자함이 가끔 도를 넘을 때 재미삼아 해 보는 상상입니다. 그래봤자 이명박 대통령만 할까요. 그는 아예 유교를 국교로 제정하고픈 맘일지도 모릅니다. 저는 최소한 “아빠 물러나라”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으니까요. 거리에서 초딩들에게 “이명박은 물러나라”는 합창을 듣는 대통령, 가련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는 초딩에게 조롱당하는 역사상 최초의 대통령입니다. 중딩과 고딩은 더욱 심하지요. 결국 초·중·고생들과 전쟁을 벌이게 된 대통령. 그 대척점엔 〈Esc〉가 있습니다. 최근 ‘몽땅 여행퀴즈’ 독자 응모를 받으면서 새삼 눈치 챈 사실입니다.
한겨레 프리미엄 사이트 ‘하니누리’를 통해 퀴즈 응모를 한 독자들은 〈Esc〉에 관한 사연과 의견을 꼼꼼히 적어주셨습니다. 무려 800여명이 온라인에서 한마디씩 거들었으니, 저희로서는 ‘민심 파악’의 좋은 기회였습니다. 그중 이런 이야기들이 참 많았습니다. “우리 집 아이들이 좋아한다.” 자세히 말하자면 “늙은 나는 〈Esc〉를 별로 안 보는데 우리 집 초·중·고생들이 꼭 찾아 읽는다”는 겁니다. 혹시, 10대 촛불시위의 배후?
이에 따라 더욱 젊은 친구들의 코드에 맞게 지면 개편을 하겠다… 라고는 감히 말씀드리지 못하겠습니다. 다음 호부터 ‘중폭’ 지면 개편이 이뤄지지만 말입니다. 되도록 더 발랄한 색조로 화장을 고치는 정도입니다.
아무튼 지면 개편을 앞두고, 이번 호에 마지막 인사를 드리는 필자들이 꽤 많습니다. 최범석, 박승화, 백우현, 탁현민, 고경원, 이은혜, 마인드C…. 〈Esc〉의 초석을 다져주신 그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큰절을 올립니다.
고경태/<한겨레> 매거진팀장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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