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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esc를 누르며
오늘은 독자에게 마이크를 넘기겠습니다.
“중학교 1학년 1학기 생활국어 1단원의 제목은 ‘생각과 표현’입니다. 박재동 화백의 만평 소개로 시작하는 이 단원에선 창의적이고 참신한 표현을 연습합니다. 저는 이 단원을 공부하면서 아이들과 함께 ‘사용불가설명서’를 만들어 보았지요. 평소 〈Esc〉를 보면서 참신한 생각에 혼자 낄낄 웃고는 했는데, 창의적인 생각을 담아내는 주제와 예시 자료로 이것이 딱이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예상대로 우리 아이들의 생각은 기발했습니다. 창의적인 생각에다가 점수를 매기는 것도 어려울 것 같아서 일단 모두 보냅니다. 참고로 저희 학교 1학년은 모두 9명입니다. 이 수업을 할 때만 해도 열 명이었는데 얼마 전에 한 명이 도시로 전학을 가서 이제는 9명이 되었답니다. 비록 신문에 실릴 만큼 그림을 잘 그리지도 못했고, 참신한 생각도 아닙니다. 그래도 이렇게 여러 사람이 보아주는 곳에 올린 것만 해도 우리에겐 좋은 기억이 될 거라 믿습니다. 틀린 글자도 참 많습니다. 제가 고칠 수도 있었지만, 하나도 손대지 않은 아이들의 작품을 ‘날것’ 그대로 보냅니다. 수업시간 45분간 땀을 흘린 우리 아이들의 작품, 어떻습니까?”
주인공은 경북 의성군 옥산면 옥산중학교 국어교사 권미연씨입니다. 그는 ‘하니누리’에 이 편지를 띄웠습니다. 중학생들의 작품 중 세 편을 추려 3면 사용불가설명서에 소개했고요. 담당 기자는 이 편지를 읽으며 뭉클한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저 역시 가슴이 따뜻하게 차올랐습니다.
〈Esc〉가 상습적으로 받는 지적 중 하나는 이렇습니다. “여유 있는 도시 사람만 보란 말이냐.” 전반적으로 소비를 부추긴다는 혐의지요. 알고 보니 시골 청소년들의 창의적 교육을 부추기는 콘텐츠도 없지 않아 다행입니다. 그 아이들의 꿈이 단단하게 익어가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고경태/ <한겨레> 매거진팀장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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