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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의 바가지

등록 2008-05-28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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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Esc를 누르며
마르크스에게 바가지를 썼습니다.

2002년 2월, 런던에서의 일입니다. 생애 첫 유럽여행이었습니다. 박물관과 미술관을 주로 싸돌아다녔습니다. 마지막 날엔 지하철을 타고 북부로 향했지요. 카를 마르크스를 만나려고 말입니다. 그는 1883년 3월, 런던에서 65살의 나이로 죽었습니다. 그가 묻힌 하이게이트 공동묘지의 입구는 할머니 혼자 지켰습니다. 입장료를 내고 났더니 할머니가 물었습니다. “사진은 찍을 거유?” 저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할머니는 입장료에 맞먹는 돈을 또 요구했습니다. 순진하게도 달라는 대로 주고 말았습니다.

그의 무덤은 멀었습니다. 양쪽에 묘지들이 줄줄이 자리한 오솔길을 돌고 돌아 끄트머리쯤에 있었던 걸로 기억됩니다. 묘소에 다다르자마자 ‘사진값’ 아깝다는 생각부터 들었습니다. 찍을지 말지 확인도 안 할 거였는데 말입니다. 그럼에도 유럽여행 중 가장 인상적인 한 장면으로 뇌리에 박혔습니다. 위대한 사상가의 무덤이 속한 공동묘지는 너무도 허름했고 황량했으며 쓸쓸했기 때문입니다. 그곳에서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후배 한 명과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인적이 전혀 없었던 탓인지, 눈 부릅뜬 두상의 마르크스와 단독 인터뷰한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바가지 쓴 게 후회되지 않았습니다.

거기에 비하면 호찌민과의 만남은 감동이 없었습니다. 베트남 하노이의 호찌민 묘소를 가면 누구나 그의 실제 얼굴을 봅니다. 미라입니다. 의관을 정제하고 긴 줄을 서서 그를 보는 일은 필수 관광코스가 되었습니다. 일부 베트남인 참배객들은 눈물을 뚝뚝 흘립니다. 베트남 혁명의 지도자이자 국부로 추앙받는 그는 후손들을 위한 ‘관광상품’이 되어 늘 똑같은 자세로 누워 있습니다. 마오쩌둥도, 레닌도, 김일성도 그렇게 합니다. 죽어서도 행복할까요?

이번 호 커버스토리는 런던도, 하노이도 아닌 파리입니다. 모처럼 진지하게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고경태/<한겨레> 매거진팀장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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