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문득 생각난…
2002년 6월의 어느 날이었다. 메일함을 열어보니 친구에게서 메일이 한 통 왔다. 메일 제목은 ‘문득 생각이 나서’. 메일에는 시가 한 편 쓰여 있었다. 그때 아마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문득’이라는 단어를 곱씹었던 것 같다. 친구가 갑자기, 아무 이유 없이 나를 떠올린 그 순간을 ‘문득’이라는 두 글자가 그 상황을 충분히 설명해주고 있었다. 기분이 좋았다. 누군가에게 문득 생각되어지는 사람이라는 게. 지구상에 아무도 나를 생각하고 있지 않을 것만 같을 때도 이 메일을 열어보면 한결 기분이 나아진다. 그때부터 누군가 문득 생각이 나면 그 순간을 그 누군가에게 전하려고 노력한다. 전화로든, 문자메시지로든, 이메일로든.
문득 누군가를 떠올리고 그 누군가에게 그 순간을 전하는 데 까다로운 기준 따위는 필요 없다. 머릿속에 툭 하고 떨어진 이름이면 누구나 괜찮다. 또 가장 자연스럽게 손이 가는 방법이면 어떻게든 괜찮다. 지금 ‘문득 생각난’을 쓰면서 문득 생각난 사람이 있다. 이번에는 편지를 써보려고 한다. 키보드 소리가 빗소리처럼 들리길래 문득 니가 생각이 났다고.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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