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문득 생각난…
모든 실수는 후회를 남기지만, ‘이러면 안 되는데’라는 자의식 속에서 저지른 실수는 더 뼈아픈 후회를 남긴다. 지난달 인도 출장 때 돌아오는 길에 들른 타이베이 면세점에서 친구들과 마실 ‘모에 샹동’을 한 병 샀다. 돔 페리뇽과 더불어 고급 발포성 와인의 대명사가 아닌가. 한국에서는 6만원을 호가했지만 면세점에서는 4만원에 불과했다. ‘싸구려 입맛들에게 미식의 세계를 가르쳐주리라.’
저녁 7시 인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문자가 날아왔다. ‘오늘 귀국이지? ○○○에서 ○○○ 등 다 모여 술 먹고 있다.’ 집에 짐을 풀고 술집으로 향했다. 도착하니 자정. 역시 죄다 취해 있었다. 맥주 서너 잔을 들이붓자 나도 취기가 돌았다. 나는 ‘샴페인은 다음에 까야겠군’이라고 생각하면서 “모에 샹동 까자!”고 외치는 자신을 발견했다. 한 친구가 말렸다. 나는 ‘다음에 까자’고 생각하면서 퐁, 코르크를 뽑아 드는 자신을 발견했다. 역시나 ‘개발에 편자’=‘마비된 혀에 모에 샹동.’ 왜 나는 후회할 걸 알면서 그랬을까? 그런데 그리 기분이 나쁘지 않은 이유는 뭘까?(빌어먹을 서른셋 수컷은 여전히 철이 안 들었군)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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