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의 광장〉(2007)
[매거진 Esc] 김은형의 웃기는 영화
뒤늦게 <만남의 광장>을 봤다. 지난해 말 <씨네21>이 2007년 결산에서 ‘올해의 주연 도둑’으로 <만남의 광장>의 류승범을 꼽은 데 공감한다. 류승범이 주인공인 임창정보다 대단히 연기를 잘했다는 건 아니다. 임창정의 끼를 발산할 멍석이 제대로 깔리지 못했던 이유가 더 크다. ‘류승범이 엄청나게 웃긴다’는 정보만을 가지고 이 영화를 봤을 때 기대했던 건 류승범과 임창정이 조우하는 장면이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류승범은 그를 잡은 군인이 선생이라며 책은 어딨냐고 추궁할 때 “똥 닦고 종이비행기 접어서, “으흑” 통곡하며 아스라히 사라졌다.
이야기상으로는 전혀 만날 일이 없지만 두 배우가 만나는 장면이 있었더라면 이 영화의 다소 지리한 진행을 단박에 뒤집을 만한 명장면이 탄생하지 않았을까 싶다. 송강호 정도를 제외한다면 두 배우는 고난이도 코미디 포스를 온몸으로 발산해내는 대한민국 최고의 명배우이기 때문이다. 물론 두 사람은 애니메이션 <아치와 씨팍>에서 이미 만났지만 목소리 연기에 머물렀으므로 제대로 된 만남이라 보기는 어렵다.
임창정과 류승범의 천부적인 코미디 연기에는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다. 공통점은 빈티 간지를 제대로 보여준다는 것. 여기서 빈티는 경제적 궁핍만이 아니라, 실업자, 양아치, 불량 청소년 등 세상이 없어 보인다고 말하는 변두리 정서가 다 포함된다. 반면 임창정이 없는 집 둘째아들처럼 요리조리 눈치를 보면서도 마음 약해 늘 빼앗기는 연기에 대가라면 류승범은 철딱서니 없는 막내아들처럼 무모하게 설레발치다가 결국 건지는 건 하나도 없는 연기에 발군이다. <위대한 유산>에서 백수라는 이유로 형과 형수에게 당하는 그 모든 구박을 꿋꿋이 버텨내면서도 또다른 백수 미영과의 구질구질한 동전 싸움에는 지고 마는 창식이나, <색즉시공>에서 온갖 불순한 상상과 욕망으로 머릿속이 가득 차 있는 ‘해맑은’ 총각 은식, 또는 <품행제로>에서 어린 후배를 삥 뜯어 말로만 듣던 나이키를 신게 됐지만 짝사랑하는 소녀에게 그것이 ‘나이스’였음을 지적받고 뻘쭘해하는 중필이나 <아라한 장풍대작전>에서 기 수련을 한다고 집에서 달걀 한 판 위에 올라가 설치다가 달걀과 함께 엄마한테 작살이 나는 상환의 연기는 임창정, 류승범이라는 배우의 코믹 에너지가 없었더라면 그저 그런 코미디 영화 중 하나에 머물렀을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이참에 <만남의 광장>에서 만나지 못한 임창정과 류승범을 투톱으로 하는 코미디 영화를 아이디어에 굶주린 충무로 제작자들에게 제안하고 싶다. 한심한 자뻑들이 자웅을 겨루는 <주랜더> 같은 영화도 좋을 것 같고, <스타스키와 허치>처럼 나사 하나가 부족한 형사들이 사고만 연발하다가 뒷발쳐 사건을 해결하는 형사 버디물도 재미있을 것 같다. 아이디어 제공 비용은 받지 않겠다. 하지만 오빠들, 성사되면 인터뷰는 내가 먼저 찜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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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형의 웃기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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