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Esc] 문득 생각난…
스타벅스의 익명성을 사랑했다. 하지만 스타벅스는 내가 애용하던 ‘와식’ 소파 한 벌을 치우고 딱딱한 의자와 테이블 두 벌로 바꾸었길래 더 이상 갈 수 없었다. 그래서 자전거를 타고 조금 먼 북카페에 가게 된 것이다.
주말마다 자전거를 타고 북카페에 간다. 보통 월요일 치 마감원고와 노트북, 그리고 읽을 책 두어 권을 배낭에 싸매고 출발한다. 북카페는 언제나 신기하다. 나는 다락방 꿀단지처럼 아껴두는 만화 <20세기 소년> 15·16권을 흘깃거리고, <신의 물방울> 앞에서 ‘나도 와인 마시면서 잘난 척해야지’ 의지를 다지나, 아직 집어 보지도 못했다. 대신 매달 한국 출발 시각표가 기록되는 <에어 타임즈>만 뒤적거리다 ‘이러다 늦겠구나’ 하고 일을 시작한다.
다시 책가방을 메고 페달을 굴리며 집으로 돌아오는 순간, 요란한 서울 거리는 프랑스 프로방스의 전원처럼 평화스러워진다. 외국에 나가 낯선 여행자의 시각으로 사물을 보는 법을 익혔으니, 이제 서울도 그렇게 낯설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아! 서울은 아름답다, 고 생각하는 순간 과속방지턱에 걸려 자전거가 휘청! 헉, 이 무슨 삼류 낭만이람.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