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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을 그림으로 기억해요”

등록 2007-12-19 18:20수정 2007-12-19 18:32

닉 히스 총지배인은 사람을 대하는게 직업이다. 사람을 대하는데도 비법이 있다.
닉 히스 총지배인은 사람을 대하는게 직업이다. 사람을 대하는데도 비법이 있다.
[매거진 Esc] 닉 히스의 ‘호텔에서 생긴 일’ 마지막회
‘사람 다루는 장인’이 되어야 하는 호텔리어로서 그동안 못 다한 이야기들

17과 16. 앞의 숫자는 닉 히스 총지배인이 호텔리어로 일한 햇수이며 뒤의 숫자는 그 가운데 아시아에서 일했던 시간이다. 그는 영국 출신이지만, 영국인에 대한 선입견과 일치하지 않았다. 표정은 풍부했고 소탈했다. 그와 인터뷰를 하면서 ‘작은 것을 보고 말할 줄 안다’는 느낌을 여러 차례 받았다. 호텔리어란, 사람을 다루는 ‘장인’이다. 사람의 미묘한 표정과 몸짓을 이해하는 능력은 거기서 연유할 터다. 이 장인의 이야기가 열두번째로 끝맺는다.

서 있을 때 팔짱 끼는 건 절대 금물

고나무(이하 고) : 아직 한국 생활에 대해서 못 다한 말이 많으실 것 같습니다.

닉 히스(이하 히스) : 많다마다요. 아무래도 송년회 시즌이니 술 얘기를 안 할 수 없네요. 전 제 인생에 마실 ‘밤샷’(폭탄주)을 한국에서 다 마신 것 같아요. 한국인들, 정말 술 많이 마셔요. 전 술을 좋아하고 특히 이가 시릴 정도로 차갑게 한 소주를 좋아하지만 폭탄주는 좀 힘들더군요. 이틀 전에 W호텔의 한국인 중역들과도 폭탄주를 마셨어요. 그중 한명이 아예 와이셔츠 팔을 걷고 머리띠를 질끈 동여맨 다음, 거대한 그릇에 위스키와 맥주를 붓고 폭탄주를 만들더군요. 그러고 나서 그걸 국자로 떠서 한 사람씩 돌렸습니다. 집에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어요. 폭탄주가 싫은 건 아니지만, 한국의 술문화가 다른 아시아 나라들과 아주 다른 건 사실이에요.


고 : 전 한국인과 다른 아시아인의 성격 차이에 대한 일화들이 재밌었습니다.

히스 : 호텔리어의 자질에 빗대서 말한다면, 한국인들은 사람을 친근하게 대하는 것(그는 ‘프렌들리’라는 단어를 썼다)이 부족하지만 업무를 효율적으로 추진하고 손님의 요구를 정확히 수행해요. 반면 동남아시아 사람들은 얼마나 친화력이 대단한지 몰라요. 대신 손님이 뭘 주문했는지 금방 잊어버리는 일도 잦고, 업무를 효율적으로 추진하는 능력은 떨어지는 편이죠. 그런 차이점을 발견하는 건 재밌는 일이에요.

고 : 요리사는 요리를 하고 목수는 나무를 다룹니다. 호텔리어는 사람을 만나는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을 대하는 데 당신만의 노하우가 있나요?

히스 : 영국에 “겉표지만 보고 책을 판단하지 말라”는 속담이 있지만, 불행히도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저부터도 첫인상이 마지막까지 간다고 봅니다. 비결이라고 할 만한 건 아니지만, 직업적 원칙 하나만 말씀드리죠. 항상 ‘열린 자세’(오픈 스탠스)를 가져요. 서 있을 땐 절대 팔짱을 끼면 안 됩니다. 이건 ‘내게 다가오지 말라’는 뜻입니다. 절대 금물입니다. 누구나 내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자세를 가져야합니다. 그 다음 중요한 게 웃음이죠. 인상 쓰지 마세요. 상대방과 항상 눈을 맞추세요.

고 : 다른 직원들도 자기만의 요령이 있나요?

히스 : 이와 관련해 호텔 직원들의 비밀 하나를 가르쳐 드리죠. W호텔 직원들은 ‘그림그리기 기법’등 기억술을 따로 배워야 합니다. 이건 몰랐죠? 수많은 손님의 요구사항을 빠짐없이 기억하는 일은 힘듭니다. 그냥 열심히 외운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기억술을 가르치는데, 그중 하나가 ‘그림그리기 기법’입니다. 가령 이런 겁니다. 1361호 손님이 3시까지 간식을 가져다 달라고 요구했다고 쳐요. 이 주문을 그냥 문장으로 외웠다간 잊어먹기 십상이죠. 그래서 주문을 한꺼번에, 순식간에 떠올릴 수 있도록 그림을 그립니다. 먼저 1361호 방을 머릿속에 그립니다. 그리고 벽에 3시를 가리키는 시계가 붙어 있다고 상상합니다. 간식을 과일로 대치시킨 뒤 객실 창가에 과일바구니가 놓여 있는 그림을 그립니다.

손님의 특징을 기억하는 데도 비슷한 기억술을 씁니다. 특급호텔쯤 되면 그냥 손님의 주문만 기억하는 게 아니라 감동을 줘야 하거든요. 가령 강아지와 함께 체크인한 손님에게 다음날 단순히 “안녕히 주무셨습니까”라고 하는 게 아니라 “강아지도 잘 잤나요?”라고 물어보는 겁니다. 그러자면 손님의 개별 특징을 일일이 기억해야 하는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니죠. 그래서 손님의 얼굴을 동물에 빗대 ‘강아지 닮은 손님’이라고 기억하는 거예요.

고 : 호텔리어들도 장인이군요. 가장 난감했던 질문은 뭐였나요?

히스 : 고객들에 대한 질문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호텔에서 벌어진 일은 호텔 안에서 머물도록 하라”는 말 기억나요? 프로페셔널 호텔리어는 고객의 비밀을 지키는 게 생명이죠. 그러면서도 일반인들에게 호텔리어의 세계를 보여주기 위해 어느 정도는 뒷얘기를 해야 했죠. 그 경계선을 지키는 게 가장 힘들었습니다.

고객의 비밀, 그 경계선의 딜레마

고 : 크리스마스 휴가는 어디서 보낼 계획이신가요?

히스 :호텔리어가 된 뒤 15년 동안 단 한번도 크리스마스 휴가를 보낸 적이 없습니다. 호텔은 연말연시에 행사가 많거든요, 하하.

그는 이번 인터뷰를 준비하며 처음으로 아시아에서 지낸 16년을 돌아봤다고 말했다. 그에게 정년을 물었다. “글쎄”라는 답이 돌아왔다. 다음번엔 어느 나라로 갈 것인지 물었다. 그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다음번엔 어느 아시아 나라에서 어떤 손님들을 맞을지 궁금해했다.

정리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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