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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호텔 레스토랑 요리사들이 음식 만드는 모습. 이들은 모두 총주방장의 지휘를 받는다. W서울워커힐호텔 제공
[매거진 Esc] 닉 히스의 ‘호텔에서 생긴 일’ ⑨
가장 경쟁적인 맞수이지만 함께 시너지 효과 만들어내는 친구
지난번에 아시아에서는 식음료(푸드앤비버리지)가 중요하다고 말했죠? W호텔 식음료 기획팀을 구성하는 핵심은 총주방장, 식음료 디렉터, 이벤트 매니저, 이벤트 코디네이터 등 네 명입니다. 이들 네 명이 요리부터 테이블 디자인, 디제이 파티 등등 레스토랑과 바에서 제공되는 모든 행사를 준비합니다. 또 외국인 총주방장이 세계 호텔 요리의 첨단 유행이 뭔지 시시각각 체크합니다. 이를 위해 식음료 기획팀은 런던과 파리 등 선진국의 레스토랑을 다니며 벤치마킹을 하죠.
“퓨전은 컨퓨전이다”라는 철학
저는 “퓨전(요리)은 컨퓨전(혼란)”이라는 철학을 갖고 있습니다. 한때 현란하게 요리를 장식하는 퓨전 요리가 유행했습니다. 그러나 요새 첨단 레스토랑의 유행은 이와 정반대입니다. 요리는 신선한 재료로 간단하게 만드는 게 오히려 가장 좋다는 게 유행입니다. 저는 요리가 진보적이되 실험적이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호텔 총주방장과 식음료 디렉터 사이에는 항상 묘한 긴장감이 흐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총주방장이 식음료 디렉터 밑에서 그를 보좌하는 역할을 맡아 왔습니다. 상당수 호텔은 여전히 이런 구조를 갖고 있죠. 그러나 최근 이런 관계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총주방장이 식음료 디렉터와 동등한 지위로 올라서서 함께 총지배인을 보좌하게 된 것입니다. 이는 주방장에 대한 사람들의 존경에서 비롯됩니다. 주방장이 되려면 군대와 같은 주방에서 오랫동안 허드렛일을 해야 합니다. 엄청난 노력과 고통이 따르지요. 매일 주방장에게 토마토로 맞아 가며 일을 배웁니다. 그들의 실력은 예술가의 그것과 비슷할 정도지요. 요리사에 대한 관심과 존경은 여기서 비롯합니다. 과거엔 홀에서 주방을 볼 수 없었지만, 이젠 요리하는 모습이 당당하게 공개됩니다.
W호텔 식음료 디렉터의 경우 요리사가 아니라 객실·레스토랑 서비스 직원 출신입니다. 레스토랑이나 바에서 음식을 나르고 손님을 접대하는 직원들은 죄다 식음료 디렉터가 거느리는 직원이라고 보면 됩니다. 총주방장과 식음료 디렉터는 가장 좋은 친구이자 동시에 가장 경쟁적인 맞수입니다. 가령 이런 식이지요. 총주방장은 자기 요리에 굉장한 열정을 갖고 최적의 상태에서 손님이 먹을 수 있도록 홀 직원들이 나르길 원합니다. ‘고능률’을 바라는 것이죠. 그래서 식음료 이벤트를 하면 총주방장이 홀 직원들에게 소리치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그러나 식음료 디렉터도 항변할 말이 있습니다. 홀 담당 직원들도 사람인데 조금씩 시간이 지체될 수 있다는 거죠. 또 제한된 시간에 여러 테이블을 서비스하다 보면 시간이 더 걸립니다. 이런 식의 다툼 아닌 다툼은 메뉴판을 만들 때도 벌어집니다. 호텔 레스토랑에서 새로운 메뉴를 하나 더 추가했다고 칩시다. 요리사들이야 요리 지식이 많으니 메뉴판에 요리 이름만 써넣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구구절절 요리 이름을 써넣으면 되레 손님들이 불편할 수 있다는 걸 모르는 것이죠. 이럴 때 식음료 직원들은 손님의 관점에서 요리에 대한 설명을 메뉴판에 적습니다. 이렇듯 W호텔의 아일랜드 출신 총주방장과 한국인 식음료 디렉터는 업무시간 중에는 종종 티격태격합니다. 그러다 저녁식사 뒤 거하게 맥주잔을 기울인 뒤 다시 친구가 되죠. 겉으론 아옹다옹하지만 실제론 ‘1+1=3’을 만들어내는 시너지 효과를 낳습니다. 훌륭한 팀인 거죠.
미국의 호텔 비즈니스와 한국의 차이
미국과 한국의 호텔업에 대한 시선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미국에서 호텔은 철저하게 비즈니스로 인식됩니다. 당신이 미국에서 호텔업을 한다고 가정해봅시다. 빌딩을 짓고 은행에서 모기지론을 빌리고 해마다 원금과 이자를 갚으면 몇 년 뒤 당신은 호텔을 소유하게 됩니다. 그게 전부죠. 그러나 한국과 아시아에서 호텔을 운영한다는 건 좀 다릅니다. 단순히 돈만 중요한 게 아니죠. 여기선 돈 많은 가문이나 기업이 호텔을 소유합니다. 그건 자랑할 만한 ‘그 무엇’입니다. 실제로 한국의 호텔 직원들은 연봉도 높습니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에서 호텔 비즈니스는 이런 대접을 받지 않아요. 솔직히 말하자면 육체노동과 관련된 직업은 점점 더 인기가 줄어듭니다. 지금 미국의 호텔에 가면 미국인 직원보다는 히스패닉이나 동남아시아 직원들이 더 많죠. 호텔업은 새로워지기 위해 노력하는 중입니다.
W서울워커힐호텔 총지배인
정리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W호텔 식음료 디렉터의 경우 요리사가 아니라 객실·레스토랑 서비스 직원 출신입니다. 레스토랑이나 바에서 음식을 나르고 손님을 접대하는 직원들은 죄다 식음료 디렉터가 거느리는 직원이라고 보면 됩니다. 총주방장과 식음료 디렉터는 가장 좋은 친구이자 동시에 가장 경쟁적인 맞수입니다. 가령 이런 식이지요. 총주방장은 자기 요리에 굉장한 열정을 갖고 최적의 상태에서 손님이 먹을 수 있도록 홀 직원들이 나르길 원합니다. ‘고능률’을 바라는 것이죠. 그래서 식음료 이벤트를 하면 총주방장이 홀 직원들에게 소리치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그러나 식음료 디렉터도 항변할 말이 있습니다. 홀 담당 직원들도 사람인데 조금씩 시간이 지체될 수 있다는 거죠. 또 제한된 시간에 여러 테이블을 서비스하다 보면 시간이 더 걸립니다. 이런 식의 다툼 아닌 다툼은 메뉴판을 만들 때도 벌어집니다. 호텔 레스토랑에서 새로운 메뉴를 하나 더 추가했다고 칩시다. 요리사들이야 요리 지식이 많으니 메뉴판에 요리 이름만 써넣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구구절절 요리 이름을 써넣으면 되레 손님들이 불편할 수 있다는 걸 모르는 것이죠. 이럴 때 식음료 직원들은 손님의 관점에서 요리에 대한 설명을 메뉴판에 적습니다. 이렇듯 W호텔의 아일랜드 출신 총주방장과 한국인 식음료 디렉터는 업무시간 중에는 종종 티격태격합니다. 그러다 저녁식사 뒤 거하게 맥주잔을 기울인 뒤 다시 친구가 되죠. 겉으론 아옹다옹하지만 실제론 ‘1+1=3’을 만들어내는 시너지 효과를 낳습니다. 훌륭한 팀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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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 히스의 ‘호텔에서 생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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