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이 방콕 쇼핑거리. ‘사바이 사바이’는 ‘천천히 여유있게’라는 뜻이다. 한겨레21 윤운식 기자
[매거진 Esc] 닉 히스의 ‘호텔에서 생긴 일’ ⑧
이스라엘과 한국과 타이의 호텔에서 겪은 문화적 차이와 우여곡절들
이스라엘과 한국과 타이의 호텔에서 겪은 문화적 차이와 우여곡절들
세계 여러 나라에서 근무하다 보니 무엇보다 문화적 종교적 차이로 우여곡절이 많았죠. 1993년 이스라엘의 호텔에서 기술 관리자로 근무하던 때였어요. 처음 호텔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한 엔지니어가 제게 와서 소리를 지르기 시작하는 겁니다. 많이 놀랐죠. 첫째 왜 내게 소리를 지르는지 몰랐고, 언어 장벽 때문에 그가 하는 말 자체를 알아듣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뒤 제 비서가 들어와 자초지종을 설명해 줬습니다. 말인즉슨, 아까 제게 화를 냈던 엔지니어는 영어가 서툴러서 그저 “커피를 마시고 싶다면 내가 아랍식 커피를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는 겁니다. 그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랍식 커피(필터를 거치지 않는 커피)를 마셔봤습니다. 그제야 전 중동사람들은 일상적인 대화에서도 서로 소리를 지른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마음속의 악마’를 참아야 성공한다
유대인들은 일주일 가운데 제7일을 ‘안식일’(사바스)라고 불러요. 그들은 이 날 모든 일을 쉬고 그들의 민족신 야훼에게 예배를 드리죠. 오후까지 늦잠을 자던 내게 “식기세척기를 고쳐 달라”고 호텔에서 전화한 날이 바로 안식일이었어요. 그때 전 서른 살이었고 적지 않은 나이였지만, 유대인들에게 안식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감이 없었습니다. 호텔 구석에 있는 식기세척기를 낑낑거리며 고치고 있는데 인기척을 느꼈어요. 못마땅한 얼굴로 저를 쳐다보는 랍비(유대교 종교지도자)와 눈이 마주쳤죠. 랍비는 안식일날 일하는 사람이 어딨냐며 호통을 쳤고, 저는 그와 주위에 있던 사람들에게 사과해야 했죠. 당연히 식기세척기는 그날 고치지 못했습니다.
한국에 왔을 때 예전에 머물던 타이의 ‘사바이 사바이’(‘천천히 여유있게’라는 뜻의 타이말) 개념과 달리 ‘빨리빨리’ 문화가 있어서 놀랐습니다. 한국에 온 뒤 처음으로 아줌마들에게 밀리고 치인 뒤 ‘사바이 사바이’라는 생각을 바꾸기로 다짐했죠! 외국인으로서 문화에 민감해져야 한다는 것이 동남아시아에서는 더욱 명백한 일입니다. 예를 들어 인도네시아에서는 일하고자 문화교습을 받고 수료증도 땄습니다. 타이에서는 호텔에서의 성공 여부를 결정짓는 요인의 하나가 자신의 직원에게 소리를 지르고 감정을 드러내느냐 아니냐입니다. 그들은 화를 절제하지 못한다는 것에 대해 ‘마음속에 악마가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며 그 악마가 언제 다시 나올지 모른다는 속설을 믿죠. 전 큰 일이 터질 때마다 입술을 꽉 깨물며 화를 참곤 했습니다. 또 자리에 앉을 때 발바닥을 보여서도 안 됩니다. 사람을 가리킬 때 발이나 발가락을 사용해서도 안 됩니다. 왕에 대한 부정적 발언이 금기시되었던 것도 생각납니다. 낯선 문화를 가진 나라에 있을 때는 조심해야 합니다. 자칫 이를 어겨서 추방당하는 일도 적지 않기 때문이죠. 타이는 동성애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나라입니다. 심지어 직원 파티 때 남자가 여성복장을 하고 오는 것도 지극히 정상적으로 받아들여지죠. 동성애에 매우 열려 있는 타이 사회에 비해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한국사회로 옮겨오니 이해하기가 힘든 점도 있었습니다.
여전히 예의와 어른 공경에 비중을 두는 점에서 아시아는 서양과 크게 다릅니다. 아직도 이해하기 힘든 것은 절대 이름만 부르지 않고 반드시 성 앞에 ‘미스터’를 붙여서 부르는 문화입니다. 가령 한국 직원들에게 “닉이라고 불러 달라”고 말하면, 그들은 항상 “네, 미스터 히스”라고 대답합니다. 한국인의 문화를 존중해야겠죠. 그래도 그렇게 불리면 나이 들었다는 느낌이 드는 건 사실입니다.
왜 꼭 성 앞에 ‘미스터’를 붙이시나요?
1999년 인도네시아에서 수십 년 만에 행해진 민주적 대통령선거 모습을 찍은 사진이 떠오릅니다. 한쪽엔 매우 세련된 자카르타 시민이 투표를 하는 모습이 있었습니다. 그 옆엔 이리안자야(인도네시아 동부의 뉴기니섬 서부에 있는 주)의 주민들이 ‘중요한 부분’만 가린 원시적인 옷을 입고 투표를 하고 있었죠. 같은 나라에서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참 신기했습니다. 요즘 많은 서양인들이 아시아의 다양한 자연에 흥미를 느끼고 있습니다. 저는 예전엔 세계가 주목하지 않던 아시아에 매력을 느끼고 도전의식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아시아에서 16년의 세월을 보낸 뒤 이제는 아시아인들을 이해하고 저 스스로도 절반은 아시아인이 돼 가고 있다고 믿습니다. 아시아에 머물면서 너무 많은 친절을 받았기에 이제 그 따스함을 돌려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닉 히스 W서울워커힐호텔 총지배인
정리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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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 히스의 ‘호텔에서 생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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