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를 누르며
[매거진 Esc] Esc를 누르며
할머니도 디지털 카메라로 놉니다.
박완서 님의 단편소설 <대범한 밥상>에 나오는 대목입니다. 칠순의 할머니인 주인공은 동네 앞산의 붉은 단풍이나 숨은 들꽃, 풍뎅이와 지렁이 따위를 똑딱이 디카에 담곤 합니다. 철마다 바뀌는 풍경사진들을 컴퓨터 파일로 정리한 뒤 틈 날 때마다 손자에게 보냅니다. 소소한 재미를 주는 ‘주접떨기’이자, 고향을 잊지 말라는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소설가 본인의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디카 열풍이 대단합니다. 한겨레교육문화센터 사진강좌 열기에서도 그걸 확인합니다. 디에스엘아르(DSLR)부터 필름카메라, 컴퓨터 사진 리터칭에 이르기까지 강좌 수가 10여 가지에 이릅니다. 그 다양한 강좌들마다 수강생 씨가 마를 날이 없습니다. 가장 인기를 누리는 분야는 단연 디에스엘아르입니다. 정원이 넘쳐 한 반을 두 반으로 나누기도 합니다.
한국에선 왜 이리 디에스엘아르 교육열이 높을까요. 보급률도 불가사의한 수준입니다. 인터넷 환경의 폭발적 팽창과 무관하지 않겠지요. 찍은 사진을 블로그나 카페에 올려놓고 함께 보며 놀기 좋은 세계 최고의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으니까요.
제 주변만 해도 전문가들이 엄청 늘었습니다. 연사속도니 접사렌즈니 하며 수준 높은 대화를 하는 자생적 전문가들입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기종 업그레이드를 갈망하며 지름신의 계시에 안절부절못합니다. 세계 디에스엘아르 이론 경시대회나 카메라 기능올림픽 같은 게 열린다면 한국인이 금메달을 싹쓸이할 게 분명합니다.
그들을 매혹시켜 온 니콘과 캐논, 캐논과 니콘. 처음 한 쪽짜리 사진면 머릿기사로 기획되었다가 이슈의 가치를 고려해 확 키웠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 하나. 한겨레 〈Esc〉는 대한민국 일간 매체 중 유일하게 매주 사진면을 운영한다는 것. 전문가 독자들의 참여공간이 앞으로도 넓다는 뜻이지요.
고경태/ <한겨레> 매거진팀장 k21@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