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문득 생각난…
공포영화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여름이 되면 꼭 한두 편의 공포영화는 보게 된다. 올해도 <해부학 교실>과 <디센트>를 봤다. <디센트>는 나름 수작이었으나 내 생애 최고의 공포영화는 아니었다. 앞으로도 나에게 최고의 공포영화는 없을 것이다. 일곱 살 때 나는 평생 동안, 적어도 30년 동안 무의식에까지 그늘을 드리운 공포영화의 원체험을 했기 때문이다.
<죠스>였다. <죠스>가 웬 공포영화? 할 사람도 있겠지만, 게다가 내가 티브이에서 본 <죠스>는 상어에게 뜯어먹힌 시체 장면 따위는 대부분 잘려나간 영화였지만, 그래도 일곱 살 어린이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공포였다. 죠스의 지느러미가 물에 뜨기 시작하면 오줌이 마렵기 시작했고, 죠스가 그 입을 쩍 벌리면 여지없이 비명이 튀어나왔다. 사람이 무서우면 비명이 나온다는 걸 처음으로 알게 된 내 인생의 사건이었다. 성인이 되고 난 뒤에도 대학입학시험을 다시 보는 꿈과 함께 상어에게 물리는 악몽은 내 꿈의 집요한 레퍼토리가 됐다.
얼마 전에 케이블 티브이에서 우연찮게 <죠스>를 다시 보게 됐다. 21세기에 고색창연한 70년대 영화가 무서울 리 없었다. 그날 밤 나는 시험을 보러 가다가 교실 복도로 쑥 올라온 상어에게 손을 물리는 꿈을 꿨다. 내 인생 최악의 악몽이었다.
김은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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