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문득 생각난…
그러니까 단열이는 ‘다니엘’이고 삼열이는 ‘사무엘’이다. 황석영의 소설 <손님>의 주인공 이름을 이야기하다가, 친구와 난 기독교 이름 대기 놀이를 했다.
그러고 보니 어릴 적엔 기독교 계통의 이름을 가진 아이들이 많았다. ‘모던’한 이름이 주는 기억의 왜곡 탓인지 모르겠으나, 그런 아이들은 부자였고 공부도 잘했던 것 같다. 사도 ‘바울’의 영어 발음을 알게 해 준 중학교 2학년 때의 파울이, 3학년 때 만난 ‘선지자’ 모세, 바티칸에 머무르지 않고 아랫동네에 살던 박바오로까지. 이제 보니 내 어린 시절의 기억은 ‘성서 위인 열전’이었다.
아프가니스탄 인질 사태를 겪으며 한국이 선교사 파송 수로 세계 2위인 걸 알게 됐다. 서구를 빼면 기독교 이름을 가진 사람 수로도 한국은 상위권에 들 것이다. 황석영은 소설을 끝맺고 책 말미에 이렇게 썼다. “기독교와 맑스주의는 식민지와 분단을 거쳐 오는 동안에 우리가 자생적인 근대화를 이루지 못하고 타의에 의하여 지니게 된 모더니티다.” 단열, 삼열, 다윗, 바울, 모세, 바오로… 수많은 기독교 이름들도 ‘자생적 근대화’를 이루지 못한 한국 교회의 징표 아닐까.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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