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Esc] 문득 생각난…
아름다운 애니메이션 <시간을 달리는 소녀>에서 주인공 소녀는 자전거를 타고 언덕을 질주하다가 기차가 달려오는 철길 건널목에서 ‘타임리프’(time leap)를 한다. 기차와 충돌하는 순간 시간이 충돌 전 상황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그 영화를 보면서 타임리프를 하고 싶은 순간은 많지만 저렇게 위험하고 고통스러운 시도를 하면서까지 시간을 되돌리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확실히 늙은 거야”라는 가벼운 한탄과 함께. 그런데 몇주 전 놀랍게도 소녀가 경험했던 순간의 유사체험을 했다. 고통은 없고 타임리프만 했으면 좋으련만 고통만 남고 타임리프는 이뤄지지 않았다. 자전거를 타고 길바닥과 제대로 충돌한 것이다.
35년 동안 경험한 부상 가운데 최상위권이라 할 만했다. 고통도 고통이고 망신도 망신이었지만 아름다운 얼굴이 훼손돼 내 인생에서 더는 미인계를 쓸 수 없게 된 것이 가장 애석했다. 소녀가 타임리프를 경험하면서 유년시절과 이별했듯이 나도 이제 미녀시대와 결별하는가. 그렇게 그날의 자전거 사고는 나에게 리와인드가 아닌 포워드의 타임리프를 제공했다.
미남 미녀 독자 여러분, 음주 후 자전거 운전은 당신의 고귀한 외모를 앗아갈 수 있습니다.
김은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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