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직 시절 경찰에 온라인 여론 조작을 지시한 혐의(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를 받고 2020년 2월14일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조현오 전 경찰청장. 2018년 10월12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으로 출석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대한민국 경찰의 수장이었던 세 경찰청장이 재임 시절의 불법 행위로 결국 법정에 섰다. 정보 경찰을 이용해 댓글을 조작하고 선거에 개입하는 등 경찰 권력을 남용한 결과였다. 2018년 3월 <한겨레> 보도로 경찰 댓글부대 운용 의혹이 수면에 드러난지 2년 만인 지난 달, 조현오 전 경찰청장과 경찰청 간부 등의 1심이 선고됐다. 조 전 청장은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고 그의 지시에 따른 5명의 전·현직 간부들도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다.
이들은 항소했지만 조 전 청장 등의 1심 판결문을 보면 2010년~2012년 조 전 청장이 경찰청 정보경찰을 동원해 여론 조작에 나선 정황이 여실히 드러난다. ‘경찰청 정보국-보안국-대변인실’ 삼각편대를 주축으로 지방청과 일선 경찰관서 소속 경찰까지 동원된 댓글부대가 만들어진 것이다.
■ 조현오 댓글부대의 시작, 경기청 ‘쌍용차 인터넷 대응팀’
조현오 전 청장이 2009년 경기지방경찰청장으로 재임하며 인터넷 여론 대응팀을 운영했던 경험은, 조 전 청장이 경찰청장 취임 뒤 전국 규모의 경찰 댓글부대를 편성하는데 중요한 기폭제가 됐다.
2009년 쌍용차 파업 사태가 격화된 때 경기청장이었던 조 전 청장은 경기청 정보과를 중심으로 50여명의 ‘쌍용차 인터넷 대응팀’을 만들었다. ‘조현오 댓글부대’의 시초이기도 했다. 이들은 각종 누리집에 쌍용차 노조와 파업을 비난하는 댓글을 다는 활동을 했고, 경기청 정보4계는 쌍용차 대응팀에 대한 자체 분석 보고서도 만들었다. 보고서에는 “경찰이 여론을 조작한다는 비난을 받을 우려, 경찰이 알바부대를 운영한다며 사실을 왜곡할 가능성이 상당”이라고 기재돼 있어 경찰 역시 활동이 공개될 경우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조 전 청장은 서울청장으로 취임하자마자 ‘쌍용차 대응팀’을 밑그림 삼아 인터넷 여론 대응팀을 서울청 내에 확대·재편했다. 2010년 1월 서울청 정보2계는 경기청 사례를 참고하여 비슷한 형태의 여론 대응팀 운영을 검토했다. 서울청은 사이버 기획정보를 전담하는 정보1과 산하에 정보4계를 설치해 SPOL(Seoul Police Opinion Leader)팀을 만들었다.
정보4계는 서울청 댓글부대의 컨트롤타워로, 이른바 ‘서울경찰 여론관리층’으로 정의되는 SPOL팀은 움직였다. 정보4계 정보관들이 대응이 필요한 사안과 대응논리(댓글)을 전하면, SPOL팀은 그에 따라 움직였다. 초기 서울청 및 산하 경찰서와 지구대, 기동관 소속 경찰 75명으로 구성됐던 SPOL팀은 조 전 청장 임기 말에 165명까지 늘어났다. 정보4계는 댓글을 일선 경찰서 실적으로 연결시켜 경찰처별 순위를 매기기도 했다. 정보 4계를 두고 서울청 일부 직원들은 “저 부서는 무슨 일을 하기에 윗선의 관심이 많고 핫(hot)하냐”고 말하기도 했다.
■ 경찰청 정보국 ‘댓글부대’ 관리…전국 규모로 확대
조 전 청장이 서울청 정보과를 중심으로 닦아놓은 댓글부대는 그가 2010년 8월 경찰청장으로 취임하면서 전국적인 규모로 확대됐다. 서울청 정보과 산하 팀조직에 불과했던 댓글부대는, 경찰청에서 ‘정보국-대변인실-보안국’으로 대폭 확대됐다. 그 결과 전국의 일선 경찰관들이 댓글 활동에 뛰어드는 토대가 마련됐다.
SPOL팀은 조 전 청장이 경찰청장이 된 뒤부터는 경찰청 정보국의 관리를 받았다. 조 전 청장은 경찰청 정보국 내에도 사이버계를 신설해 서울청 SPOL팀을 관리했다. 경찰정 정보관들은 주요 사이버 동향을 정리해 댓글조작이 필요한 사안은 서울청 정보4계를 통해 SPOL팀에 ‘발주’하고, 이를 보고 받는 체계를 마련했다.
조 전 청장과 서울청에서 댓글 활동을 주도한 정보국 간부들도 경찰청으로 보직을 옮겨 연속성 있게 댓글 업무를 수행했다. 김성근 전 경찰청 정보국장은 서울청 정보1과장과 정보관리부장을 거쳐 경찰청 정보국장으로 승진했고, SPOL팀 활동이 경찰청 정보국에 보고되는 체계를 만들었다. 그는 조 전 청장과의 공모 혐의가 인정돼 1심에서 징역 1년 및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황성찬 전 경찰청 보안국장도 2010년 서울청 정보관리부장 시절부터 조 전 청장을 보필해 2011년에는 경찰청 보안국장으로 있으면서 조 전 청장의 댓글 지시를 보안국에 전파하는 역할을 맡았다. 황 전 국장도 이러한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경찰청 대변인실도 정보국이 만든 매뉴얼을 따랐다. 2011년 10월 정보국은 대변인실의 홍보 활동 방안을 담은 보고서를 작성하는데, 대변인실은 이를 토대로 각 지방경찰청에 ‘온라인커뮤니케이터’ 경찰관 233명을 지정했다. SPOL팀이 댓글 여론을 경찰 쪽으로 유리하게 선회하는 정도였다면, 온라인커뮤니케이터는 적극적으로 국민 여론을 만들어 내고자 했다. 대변인실에서 정보국 검토안을 참고해 만든 ‘뉴미디어 홍보 발전방안’을 보면 경찰청은 온라인커뮤니케이터 추진 목표를 “장기적으로 전 경찰관의 온라인 홍보요원화”로 삼고 “이슈 발생 시 선제적·주도적으로 사이버상 여론을 형성, 허위 왜곡 정보에 근거한 비난 여론 사전 차단”한다는 운영방안을 세웠다.
■ MB정권 첫해부터 시작된 경찰청 보안국 댓글공작
경찰의 댓글 활동을 조 전 청장이 처음 시작한 것은 아니다. 그 시작은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 전 청장 재판부는 “경찰청 보안사이버수사대 경찰관들은 2008년경부터 특정 이슈에 대한 인터넷 게시글에 댓글을 기재하는 등으로 여론 대응을 해 왔다”고 밝혔다. 다만 조 전 청장 때부터 댓글작업의 양이 폭증했다. 당시 보안사이버수사대장이었던 민아무개 전 대장은 법정에서 “어청수(2008.2∼2009.1), 강희락(2009.3∼2010.8) 경찰청장 시기에도 댓글작업 지시가 있었지만 그리 많지 않았다. 조 전 청장이 경찰청장으로 부임하고 난 후 댓글작업 지시를 받는 횟수가 상당히 늘어났던 것 같다”고도 증언했다.
실제로 경찰청에 체계적인 댓글부대가 갖춰진건 조 전 청장 때부터다. 경찰청 보안국의 보안사이버수사대와 전국 지방경찰청 보안사이버요원들은 다른 가족 명의로 언론사 사이트에 가입했고, 경찰관서 아이피(IP) 주소가 노출될 것을 우려해 피시방이나 자택에서 댓글 업무를 보았다. 천안함 폭침이나 남북 비밀접촉 폭로 등 안보 이슈 뿐 아니라 이 전 대통령 탄핵과 구제역 확산 등 정부 현안에 대한 댓글 활동도 펼쳤다. 2011년 1월 보안국의 ‘구제역, 인터넷 괴담 실태 분석 및 대응 방안’ 보고서에는 “보수단체와 진보단체 등의 동향을 분석하고 전국 보안사이버요원 81명을 가동해 모니터링 활동 강화”라 기재됐다. 이 보고서는 청와대 치안비서관과, 행정안전부 장관 치안비서관한테까지 보고됐다.
■ 줄줄이 재판받는 전직 경찰청장
조 전 청장에 이어 강신명·이철성 전 경찰청장의 정치개입 사건도 한창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강 전 청장과 이 전 청장은 2014∼2016년 경찰청 정보국을 통해 총선 대비 목적으로 지역 및 정치인 등의 동향을 샅샅이 살펴 청와대에 보고해 온 혐의(공직선거법 위반, 직권남용)를 받고 있다.
조 전 청장부터 이 전 청장에 이르기까지 경찰이 광범위한 여론전을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정보경찰이 ‘전략 본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덕분이었다. 정보경찰의 업무가 폐쇄적인 정보 수집을 특성으로 하는 탓에 음성적으로 수행되는 댓글부대 운용에 특화될 수 있었다. 오민애 변호사는 “경찰은 범죄예방, 공공질서 안정화를 위해 정보 기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와 관련없는 홍보 기능 등 댓글 활동에 정보국의 정보 기능을 활용했다”며 “그 자체로 정권 입맛에 맞는 방식으로 수집된 정보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정보 기능의 폐단을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찰 조직의 엄격한 상명하복 지휘체계 또한 여론 조작 등의 불법행위가 가능했던 이유로 꼽힌다.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장영수 교수는 “경찰 조직은 상급자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불법적인 일이 행해질 우려가 적지 않다. 이런 우려가 불식되지 않은 상황에서 검경수사권 조정이 이뤄지고 수사권만 가져온다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도 했다. 조 전 청장 등 최상급자가 수직적인 지휘 체계를 이용해 불법을 저지를 때, 이를 통제 또는 견제할 장치가 없다는 점이 한계로 남아 있는 것이다.
장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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