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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하루 수십번 경련 숨 쉬기도 어려운, 7살 주원이의 사투

등록 2020-02-05 04:59수정 2021-07-06 15:32

〈한겨레〉 2019 나눔꽃 캠페인

난치성 간질·뇌질환 동반하는
레녹스가스토증후군에 뇌병변…
이름도 생소한 병들까지 더해져
앉지도 서지도 먹지도 못해
발작이 멈추면 가래와의 사투
폐에 가득 차 5분마다 뽑아줘야

치료비로 한 달 500만원 들지만
정부 지원 간병비는 30만원이 전부
레녹스가스토증후군과 미토콘드리아세포병증이라는 희귀질환을 앓고 있는 주원이가 지난달 17일 대전 대덕구 집에서 휠체어에 앉아 있다. 대전/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레녹스가스토증후군과 미토콘드리아세포병증이라는 희귀질환을 앓고 있는 주원이가 지난달 17일 대전 대덕구 집에서 휠체어에 앉아 있다. 대전/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주원(가명·7)이의 몸에는 하루에도 수십차례 ‘지진’이 난다. 그럴 때마다 온몸이 경련으로 부들부들 떨리고 눈동자가 돌아간다. 발작이 멎으면 일상적인 가래가 주원이를 괴롭힌다. 엑스레이 속 주원이의 폐는 눈처럼 하얗다. 염증으로 생긴 가래가 폐 안을 가득 채운 탓이다. 주원이의 숨소리가 탁해지면 어머니 배정아(가명·41)씨는 능숙하게 주원이의 침대 옆에 설치된 석션(기도에 막힌 이물질을 빨아들이는 치료)관을 주원이의 기관지에 집어넣는다. 가래가 심해지면 5분에 한번씩 석션을 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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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시로 몸에 지진 내는 ‘레녹스가스토증후군’

레녹스가스토증후군과 미토콘드리아세포병증, 뇌병변 중증 장애와 지적 장애까지…. 살면서 단 하나도 만나기 힘든 희귀 난치병을 주원이는 몇개나 지니고 있다. 난치성 간질과 함께 진행성 뇌질환을 동반하는 레녹스가스토증후군은 발작을 일으키는 주원인이다. 지속적인 경련 탓에 주원이는 꼼짝도 할 수 없다. 앉지도 서지도 못한다. 말도 제대로 하기 어렵다. 음식을 씹지 못하니, 제대로 삼키지도 못해 위루관 튜브로 영양을 공급받는다. 때론 숨 쉬는 일조차 힘겹다. 그때마다 배씨는 주원이 침대 옆에 설치된 산소발생기를 주원이 얼굴에 대고 가슴을 눌러준다.

가끔 경련이 심해질 때 주원이의 허리는 활처럼 휘고 온몸이 굳는다. “폐가 일을 하지 않는” 때다. 동작을 멈춘 폐는 산소를 받아들이길 거부하며 한없이 쪼그라든다. 혈중 산소량이 떨어지면 주원이의 이마는 차가워지고 입술은 검붉게 변한다. 집에 갖춰진 산소호흡기로도 대처가 어렵다. 꼼짝없이 중환자실로 가야 한다. 배씨가 씻느라 주원이 곁을 잠시 비우는 사이에도 주원이 침대 위에 설치된 폐회로텔레비전(CCTV)을 계속 휴대전화로 확인하는 까닭이다.

계속된 재활과 치료의 효과가 잘 나지 않는 건 주원이 몸에 자리 잡은 또 다른 희귀병 때문이다. “경기를 일으킨 아이치고는 움직임이 너무 없는 거예요. 재활 치료를 계속해도 상태가 좋아지다 어느 한계점에 부딪히면 계속 무너져내렸고요.” 검사 결과 배씨는 ‘미토콘드리아세포병증’이라는 생소한 병명을 다시 받아들었다. 희귀병에 관한 한 대학병원 교수들이 인정할 정도로 ‘준전문가’가 된 배씨지만, 이 병만은 아무리 찾아도 정보가 나오지 않았다. “걸린 사람이 국내에 별로 없다고 하더라고요. 염색체가 문제라는 정도만 알고 있어요.”

레녹스가스토증후군과 미토콘드리아세포병증이라는 희귀질환을 앓고 있는 주원이를 어머니 배정아씨가 지난달 17일 대전 대덕구 집에서 휠체어에 앉혀주고 있다. 대전/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레녹스가스토증후군과 미토콘드리아세포병증이라는 희귀질환을 앓고 있는 주원이를 어머니 배정아씨가 지난달 17일 대전 대덕구 집에서 휠체어에 앉혀주고 있다. 대전/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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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 있어도 주원이 지키자고 약속”

태어난 지 16개월밖에 되지 않은 주원이에게 모든 고통이 들이닥친 2014년 12월7일 자정을 배씨는 절대 잊을 수 없다. 밤 12시가 넘은 시각, 주원이의 몸이 서서히 굳기 시작했다. 심상치 않아 구급차를 불렀다. 구급차에 설치된 산소호흡기는 어린 주원이에게 맞지 않았다. 뇌에 산소 공급이 멈췄다. 응급실에 가자마자 기도 삽관을 하고 중환자실로 갔다. 한뼘쯤 되는 아이의 가녀린 사지가 지진이라도 난 듯 경련했지만 아무리 약을 투입해도 멎지 않았다. 전신마취제를 맞고도 주원이의 왼팔은 사흘이 지나도록 경련을 멈추지 않았다.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무너져요. 당시 진료하던 교수님이 포기하라고 했어요. 뇌 손상이 너무 심해서 깨어나도 예전 모습으로 못 돌아가니까 빨리 둘째를 가지라고요.” 중환자실 앞에서 주원이 엄마와 아빠는 서로를 붙들고 울며 다짐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주원이를 지키자.”

배씨는 그 뒤 주원이를 24시간 지키고 있다. 2016년 휠체어를 사기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몸을 등받이 삼아 주원이를 기대게 한 채 9시간씩 안아주곤 했다. 밥을 먹고 바로 누우면 소화가 안 돼 배가 가스로 가득 차기 때문이다. 위루관에 넣는 유동식 외에 씹는 운동을 위한 이유식도 따로 만들어 보관한다. 자신의 끼니는 하루 한끼도 제대로 못 챙겨 먹는 날에도, 한 시간씩 주원이를 붙들고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딸기 요거트를 먹인다. 배씨는 잠도 편히 잘 수 없다. 주원이 곁에서 자면서 2시간에 한번씩은 아이의 호흡을 확인하기 위해 일어난다. 가끔 남편이 ‘당번’을 맡아 안방에서 잘 때조차 엄마는 주원이의 호흡이 거칠어지는 걸 느낀다.

자연스레 배씨의 사회적 삶은 사라졌다. 건축을 전공한 배씨는 건축기사와 건설안전기사 자격증을 따고 설계 일을 했던 건축가지만 ‘건축가’ 배씨의 정체성은 ‘주원이 엄마’로 축소됐다. 스스로의 몸을 챙길 시간도 없다. 주원이를 간병하느라 무리한 탓에 무릎 인대가 파열됐지만 수술을 받아도 재활에 들일 시간이 없어 진통제만 챙겨 먹는다. 주원이가 처음 병원에 실려 갔던 날, 몸이 굳은 걸 조금만 빨리 발견했어도 주원이가 이렇게 아프지 않았을 거란 죄책감에 잠시도 아이의 곁을 떠날 수 없게 됐다. 주원이가 아프기 시작한 뒤 7년 동안 딱 한번 외식을 했을 정도다.

“지난해 시어머니가 칠순이셨어요. 며느리 밥 한번 먹이는 게 소원이라고 하시는 거예요. 뭘 먹어야 할지 제가 결정하지 못하니까 뷔페로 데려가서 마음껏 먹으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때 남편에게 주원이를 맡기고 두시간 정도 외출했어요.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 외식이에요.”

가족의 헌신적인 보살핌 덕에 주원이의 상태는 조금씩이나마 나아지고 있다. ‘일보 후퇴’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방 함량이 높은 영양식 위주의 식이요법을 받다 보니 어린 나이에 골다공증에 시달렸고, 위루관 시술 뒤에는 위에 염증을 달고 지냈다. 그래도 숨 쉬는 것만큼은 확실히 좋아졌다. 호흡기가 가래로 꽉 차 숫제 숨을 쉬기 힘들던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숨을 쉴 때 작게 소리를 내는 정도다. 계속된 경련으로 온몸에 힘이 들어가 근육이 뒤틀리고 고관절이 무너졌지만, 매주 받는 재활 치료 덕에 근육 상태도 호전되고 있다.

레녹스가스토증후군과 미토콘드리아세포병증이라는 희귀질환을 앓고 있는 주원이의 어머니 배정아씨가 지난달 17일 대전 대덕구 집에서 주원이의 얼굴을 닦아주고 있다. 대전/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레녹스가스토증후군과 미토콘드리아세포병증이라는 희귀질환을 앓고 있는 주원이의 어머니 배정아씨가 지난달 17일 대전 대덕구 집에서 주원이의 얼굴을 닦아주고 있다. 대전/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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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에 드는 비용만 500만원…쌓이는 적자에 고민 늘어나

문제는 치료비다. 호흡도 불안하고 경기가 잦은 모습을 본 대학병원들은 주원이의 재활 치료를 에둘러 거절했다. 사설 재활 치료를 받을 수밖에 없다. 1주일에 8차례가량 받아야 하는 재활 치료의 1회 비용은 8만원이다. 재활 치료 비용만 한달에 250만원이 넘는다. 뒤틀린 근육을 바로잡으려면 감내해야 하는 지출이다. 분기에 한번씩 대학병원에서 받는 검진도 만만치 않다. 검진비 70만원은 제쳐두더라도 호흡 곤란이 언제 올지 모르는 주원이를 위해 병원에 갈 때마다 산소호흡기가 마련된 사설 구급차를 써야 해서다. 대전에서 서울을 오가는 비용만 60만원이 넘는다.

매달 쓰는 소모품 비용도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커졌다. 탈수 증상을 막기 위해 물을 많이 마셔야 하는 주원이의 몸 상태 때문에 하루에 기저귀를 평균 15개 사용한다. 기저귀값만 한달에 30만원 넘게 든다. 그밖에 피딩백(음식을 삼킬 수 없는 환자에게 유동식을 공급하기 위한 주머니)과 위루관 튜브, 주사기, 물약병과 섭식용품, 구강재활용품, 석션용품 등 30종이 넘는 소모품을 매달 사는 데 드는 돈만 한달에 120만원이 넘는다.

이렇게 주원이 앞으로 들어가는 치료비가 한달 평균 500만원을 넘긴다. 식재료값을 빼곤 부부를 위해 단 한푼을 쓰지 않는다. 주원이의 할머니가 일을 해서 매달 100만원씩 보태주고, 남편이 야간근무와 주말근무를 자청해 250만원을 벌고 있지만, 매달 200만원씩 적자가 난다.

결혼 전 부부가 모아둔 돈으로 근근이 버티고 있지만 슬슬 바닥이 보인다. 그러나 남편에게 근로소득이 있어 정부의 지원도 받지 못한다. 주원이가 자라면서 그나마 10만원씩 받던 아동수당과 양육수당도 못 받게 됐다. 정부가 주원이 가족에게 직접 지원하는 돈은 간병비 30만원이 전부다. “남편은 집이라도 팔고 이사해 돈을 보태자고 했는데 전 반대하고 있어요. 치료가 길어지면 전셋집도 사라져 지낼 곳이 없어 입원 생활을 전전하는 다른 난치병 가족을 많이 봤거든요. 일단은 버텨보려고 해요.”

어둠뿐이던 현실 속에서 배씨는 주원이 눈을 볼 때마다 희미한 빛을 찾아낸다. 눈도 제대로 못 맞추던 주원이가 이제 눈앞에 엄마의 얼굴을 가까이하고 움직이면, 움직임에 맞춰 눈동자를 좌우로 움직이는 걸 느낄 수 있다. 배씨는 ‘눈맞춤’을 시작으로 주원이가 조금씩 반응해주길 희망하며 7년을 버텨내고 있다. 주원이가 언젠가는 웃어주고, 목을 가누고, 이름을 부르는 엄마 아빠에게 응답해줄 거라고 믿는다. 돌 전 원숭이가 나오는 동영상을 보고 환하게 웃던 주원이와 언젠가 동물원에 함께 가는 게 배씨의 소원이다.

지금도 배씨는 하루에도 몇번씩 주원이의 귀에 대고 속삭인다. “다음번에도 내 아들로 태어나줄래? 다시 한번 내 아들로 태어나면 건강하게 낳아줄게. 사랑해 주원아.”

캠페인 참여하시려면

주원이 가족에게 도움의 손길을 주시려는 분은 계좌로 후원금을 보내주시면 됩니다.(기업은행 035-100411-01-456, 예금주: 사회복지법인어린이재단)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누리집(www.childfund.or.kr)과 네이버 해피빈(happybean.naver.com)에서도 후원이 가능합니다. 또 다른 방식의 지원을 원하시는 분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1588-1940)으로 문의해주십시오. 기부금 영수증도 발행받을 수 있습니다. 모금 목표액은 3천만원입니다. 후원금은 주원이의 재활치료비 및 소모품 구매 비용으로 사용되고, 목표액 이상이 모이면 주원이처럼 어려운 사연의 가정에 지원됩니다.

보도 이후

<한겨레>와 월드비전이 함께한 ‘나눔꽃 캠페인’을 통해 은지(가명)네 사연(▶관련 기사 : 약도 치료법도 없는 병은 잇달아 두 자매를 덮쳤다) 이 소개된 뒤 모두 3004분께서 3200만7910원(1월30일 기준)의 정성을 모아주셨습니다. 월드비전은 “소중한 후원금을 은지네 가족의 생계비, 치료비와 교육비로 전달하겠다. 또한 목표액을 넘어선 후원금은 은지네와 같은 어려운 상황에 처한 다른 위기 가정에 소중히 지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은지네 가족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해주신 후원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대전/전광준 기자 ligh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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