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2019 나눔꽃 캠페인
폐 근육 마비된 언니, 방광 기능 잃은 동생
‘급성횡단척수염’ 앓는 12살 은지 숨쉬기 힘들어
인공호흡기에 의지 성장기에 예측 불가능…체형 이상도
“나 죽는 거야?” 공포는 나날이 늘어
8살 은수는 방광이 몸 밖으로
태어나자마자 16시간 수술받아 평생 기저귀 의지해야
첫째 치료비만 월 200만원씩 드는데
차상위계층 기준 안돼
지원 못 받고 빠듯한 살림에 빚 갚을 엄두도 안 나
“왼손만 잘 움직이면 웹툰 작가 할래” 절망 속에서도 은지는 꿈을 그린다
폐 근육 마비된 언니, 방광 기능 잃은 동생
‘급성횡단척수염’ 앓는 12살 은지 숨쉬기 힘들어
인공호흡기에 의지 성장기에 예측 불가능…체형 이상도
“나 죽는 거야?” 공포는 나날이 늘어
8살 은수는 방광이 몸 밖으로
태어나자마자 16시간 수술받아 평생 기저귀 의지해야
첫째 치료비만 월 200만원씩 드는데
차상위계층 기준 안돼
지원 못 받고 빠듯한 살림에 빚 갚을 엄두도 안 나
“왼손만 잘 움직이면 웹툰 작가 할래” 절망 속에서도 은지는 꿈을 그린다
‘급성횡단척수염’을 앓고 있는 정은지(왼쪽)양과 방광이 몸 밖으로 나온 채 태어나 두차례 방광 복원 수술을 받은 은수양이 지난 12월16일 수원시 권선구 자택에서 펭귄 인형에 얽힌 사연을 이야기하며 활짝 웃고 있다. 펭귄은 삼남매가 가장 사랑하는 동물인데 중환자실에서 홀로 견뎌야 했던 은지양을 지켜준 친구들이기도 하다. 수원/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급성횡단척수염’을 앓고 있는 정은지양의 치료를 돕기 위해 수원시 권선구 자택에 마련된 의료기기들. 수원/이정아 기자
‘급성횡단성척수염’을 앓고 있는 정은지양이 지난 12월16일 수원시 권선구 자택 의료용 침대 위에서 온라인 학습을 하고 있다. 수원/이정아 기자
면역체계 이상으로 신경세포 파괴되는 병 이 병은 우리 몸에 원인 모를 내부 면역체계 이상 등으로 척추 속 신경세포인 척수에 염증이 생겨 신경세포가 파괴되는 병이다. 발병 지점 아래로 모든 신경 신호가 끊겨 근육의 운동이 정지된다. 은지는 4~5번 경추에 염증이 생겨 목 아래쪽으로 급속하게 사지 근육이 마비됐다. 서울대학교병원에선 10대가 이 병에 걸린 사례는 지금까지 2명 있었다고 했다. 희귀한 사례여서 당장 은지를 치료할 수 있는 수술도, 약도 없다. 은지는 한번 할 때마다 3~4시간씩 걸리는 ‘혈장 교환술’을 받으며 병원에서 넉달 동안 지내야 했다. 혈장 교환술은 은지 몸에 있는 피를 걸러내 염증의 원인이 되는 성분을 없애는 일종의 보조 치료다. 정씨는 “이 치료 역시 단지 병의 진행 속도를 늦추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마비는 점점 심각해졌다. 오른손에서 시작한 마비 증상이 폐 근육 마비로 번졌고, 은지는 결국 호흡 곤란 증상으로 인공호흡장치를 달기 시작했다. 동시다발적으로 몸 전체 근력이 떨어지다 보니, 관절이 벌어지면서 척추가 틀어지는 체형 변형도 왔다. 소변 제어가 안 되면서 밤에 기저귀를 차기 시작했다. 몸이 불편해지면서 은지는 부쩍 공포가 커졌다. 수술실이나 검사실에 들어가 몇시간씩 있다가 나와야 할 때마다 “저기 들어가면 나 죽는 거 아니야?”라고 물었다. 중환자실에서 머물면서 시신 위로 파란색 천이 씌워진 채 실려 나가는 병원 침대를 한달 내내 봐야 했다. 그러고 난 뒤 일반병실로 이동했지만, 파란색 상자만 봐도 무서워하기 시작했다. “나도 죽을 수 있겠다”는 말도 되뇌었다. 부모에게 “왜 내가 아파야 해?”라고 되물으며 울기도 했다. 은지 부모는 그 말을 들으면 심장이 무너져 내렸다. 가만히 누워 있으면 죽을 것 같다며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새벽에도 몇번씩 아빠 정씨를 깨워 침대를 세웠다가 눕혀달라고 요구했다. 병원에서도 부모의 심장을 할퀴어놨다. 의사는 “은지의 근육 기능이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살지 못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 일들로부터 벗어난 지 1년6개월 가까이 지난 현재, 은지의 상태는 그나마 조금 나아졌다. 오른쪽 어깨부터 오른손 끝까지는 근육의 기능이 사라진 상태지만, 힘겨운 재활치료를 받으며 왼쪽 팔의 근육과 두 다리는 조금씩 기능을 되찾고 있다. 숨쉬기도 조금 나아져서 잘 때 빼고는 인공호흡기를 차지 않게 됐다. 그렇다고 해서 일상이 모두 자유로워진 건 아니다. 은지는 여전히 밥을 먹을 때 밥그릇에 닿을 듯이 얼굴을 가까이 대고 간신히 왼손으로 밥을 욱여넣는다. 4학년 1학기 이후 2년 가까이 학교생활도 못 하고 있다. 은지는 집에서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30분까지 교육청에서 진행하는 사이버 수업으로 아쉬움을 달랜다. 두 다리의 기능이 완전히 돌아오지 못해 보행도 어렵다. 일주일에 4번 재활치료를 위해 병원에 갈 때 반드시 엄마의 동행이 필요하다. 버스나 지하철 이용이 힘들어 택시를 타야 한다.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하고 싶어도 꼭두새벽에 불러야 오전에 간신히 오기 때문에 쉽지가 않다.
‘급성횡단성척수염’을 앓고 있는 정은지양이 지난 12월16일 수원시 권선구 자택에서 아버지와 펭귄 인형에 얽힌 사연을 이야기하다 미소짓고 있다. 펭귄은 삼남매가 가장 사랑하는 동물인데 중환자실에서 홀로 견뎌야 했던 은지양을 지켜준 친구들이기도 하다. 앞의 펭귄 그림은 은지양의 작품이다. 수원/이정아 기자
국가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가족 부모는 그런 은지를 보면서 마냥 미안할 뿐이다. 은지가 아픈 이후로 은지네 집 형편은 급속도로 악화했다. 아빠 정씨는 반도체 장비에 들어가는 각종 제어장치를 만드는 중소기업에서 9년째 일하고 있다. 은지가 아프기 전까지는, 하루 10~12시간 일하고 받는 380만원가량의 월급으로 은지와 동생 두명을 포함한 다섯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다. 그런데 은지가 아프기 시작하면서 그동안 모아둔 돈이 병원비로 모두 사라져버렸다. 6년 전 지금 사는 집을 사면서 받은 대출금 1억원 가운데 남은 5천만원은 갚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은지의 시술 비용, 중환자실 입원 비용, 인공호흡기 대여 비용 등 지난해 1년 동안 들어간 병원비만 800만원이 넘는다. 일주일에 네번, 병원 두곳에서 재활치료를 받는 데 드는 비용은 한번에 5만~10만원이다. 여기에 왕복 택시비 4만원, 인공호흡기 대여료 월 5만원, 가늠하기 힘든 기저귀 구매 비용까지…, 각종 치료 비용만 월 200만원가량 든다. 근육이 제 역할을 못 하는 탓에 뼈와 척추가 휘어진 은지는 한창 자랄 나이여서 매달 예상이 어려운 체형의 변화가 나타난다. 최근 병원에서는 ‘척추측만증’ 진단을 하면서 보호장구가 필요하다고 했다. 은지가 성장해가면서 몸에 어떤 이상이 생겨서 어떤 치료에 얼마나 비용이 더 들어갈지 예상하기 어렵다. 상황이 이런데도 한달 소득이 지난해 기준 5인 가족 중위소득(546만7040원)의 80% 정도인 은지네 가족은 차상위계층(중위소득 50%)에도 속하지 않아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정씨가 병원 안에 있는 사회복지시설, 지역주민센터 등을 발이 닳듯 찾아다니며 평생 처음 국가에 손을 벌려봤지만, 한결같이 돌아오는 대답은 “현재 소득이 지원 기준에서 초과된다”는 말뿐이었다. “우리는 은지한테 약도, 수술도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그런데 아이를 위해 쓸 돈을 지원받기 위해 손을 내밀 곳조차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제가 하는 일을 관둬야 하거나 아예 낙오자가 돼서 빚을 지고 살아야만 국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건가, 이런 생각도 들었어요.” 아빠 정씨의 말이다. _________
동생 은수도 방광외반증 희귀질환 앓아 불행은 늘 겹쳐서 찾아온다. 은지보다 네살 어린 동생 은수(가명·8)도 약과 치료법이 없는 희귀질환을 안고 태어났다. 은수는 2012년 출생 때부터 방광이 몸 바깥으로 나온 상태였다. ‘방광외반증’이라고 했다. 방광 등을 받치는 골반뼈가 덜 자라 벌어진 채로 태어나 방광이 몸 밖으로 나온 희귀병이다. 12시간 안에 수술을 받지 못하면 자기 소변으로 인한 오염으로 사망한다는 얘기를 듣고 은수 부모는 은수를 데리고 곧바로 서울대병원으로 뛰어갔다. 16시간가량 수술을 했다. 수술 이후 은수의 몸에는 배꼽이 없다. 방광 기능이 소실돼 소변을 가리지 못하기 때문에 초등학교 2학년에 올라가는 현재까지 은수 역시 은지와 함께 기저귀를 차고 있다.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대학병원 세 군데에 가봤지만 “소변 주머니를 몸 밖에 달아 2시간에 한번씩 갈면서 평생 살아야 한다”는 똑같은 답이 돌아왔다. 마지막으로 간 병원에서는 “일단은 요실금약을 먹으며 의학 발달로 새로운 치료법이 나올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보자”고 제안했다. “은수가 초등학교에 들어간 뒤 기저귀 차는 게 창피한지 요즘은 언니의 방수 팬티를 몰래 꺼내서 입기도 하는데, 그 모습을 보면 마음이 너무 아파요.” 엄마 김선아(가명·35)씨의 말이다. 약도, 치료법도 없는 병 때문에 고생하는 아이 둘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부모는 절망적이기까지 하다. 엄마 김씨는 “그냥 다 같이 죽어버리면 끝날까”와 같은 극단적인 생각을 한 적도 있다고 털어놨다. 일상이 힘든 아이 둘 옆에서 한시도 떨어지면 안 되는 상황이다 보니 은지의 재활치료를 위해 병원에 갈 때를 제외하고 김씨는 외출도 할 수 없다. “은수가 미술학원에 다니고 싶다고 하는데, 하고 싶은 걸 시켜주지 못하니까 너무 미안해요. 문제집도 주변에서 구해주는 것으로 시키고.” 김씨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왼쪽 팔만 잘 움직여도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래도 은지는 요즘 부쩍 희망을 말한다. 왼손의 기능이 거의 예전처럼 돌아오면서 틈만 나면 왼손으로 만화를 그리는 게 요즘 은지의 취미가 됐다. 왼손이 조금만 더 자유롭게 움직이면 웹툰 작가라는 꿈도 이룰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제가 그린 그림으로 이모티콘을 만들고 싶어요. 그걸로 돈을 벌어 힘든 아이들을 돕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마비된 몸으로도 꿈꾸는 일을 잊지 않은 은지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캠페인 참여하시려면
은지네 가족에게 도움을 주시려는 분은 계좌로 후원금을 보내주시면 됩니다.(우리은행 269-800743-18-309 예금주: 나눔꽃 사회복지법인 월드비전) 월드비전 누리집(www.worldvision.or.kr)과 네이버 해피빈(happybean.naver.com)에서도 후원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방식의 지원을 원하시는 분은 월드비전(02-2078-7000)에 문의해주십시오. 기부금 영수증도 받을 수 있습니다. 목표 모금액은 2500만원입니다. 후원금은 은지와 은수의 의료비, 교육비, 생계비로 사용되며, 목표액 이상 모이면 은지네 가족처럼 어려운 사연의 가정에 지원됩니다.
보도 이후…
<한겨레>와 대한적십자사가 함께한 ‘나눔꽃 캠페인’을 통해 지윤씨네 가족의 사연(▶관련 기사 : 5남매 괴롭힌 새아빠의 폭력…23살 맏딸은 오늘도 악몽 꾼다)이 소개된 뒤 모두 248분께서 2416만3666원(1월6일 기준)의 정성을 모아주셨습니다. 대한적십자사는 “소중한 후원금은 지윤씨 가족의 생계비, 동생들의 치료비와 교육비로 전달하겠다. 또한 목표액을 넘어선 후원금은 지윤씨와 같은 어려운 상황에 처한 다른 위기가정에 소중히 지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지윤씨 가족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해주신 후원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연재한겨레 나눔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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