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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수능시험 마친 딸, 엄마·할머니와 사우나 갔다가…”

등록 2017-12-22 08:37수정 2017-12-25 15:01

충북 제천시 ‘두손스포리움’ 화재 현장
가족·친지 잃은 조문객들 깊은 울음 토해
눈물도 그치고 멍하니 하늘만 보는 조문객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어디갔어, 어디갔어!”

21일 밤 11시 30분께 충북 제천시 제천서울병원. 한 중년 여성이 쓰러질 듯 위태롭게 장례식장에 들어섰다. 화재로 친구를 잃은 이 여성은 장례식장에서 만난 지인들을 부둥켜안고 참았던 울음을 토했다. 충북 제천시 하소동에 있는 복합스포츠시설 ‘두손스포리움’에서 불이 나 29명이 숨진 가운데, 13명의 사망자가 안치된 제천 서울병원에는 가족·친지의 사망을 확인한 이들이 눈물을 쏟아냈다. 눈물도 나오지 않는 듯 멍하니 하늘만 보고 있는 조문객도 많았다.

술에 취해 불콰해진 얼굴로 장례식장에 앉아있던 정아무개씨는 이 사고로 사촌 제수 송아무개(51)씨를 잃었다. 사고 소식을 듣자마자 병원으로 달려왔다는 정씨는 “하늘이 원망스럽다”며 눈시울을 훔쳤다. 그는 “제수가 원래 오전에 사우나를 다닌다고 알고 있었는데, 어쩌다 오늘만 오후에 갔다고 했다. 사우나에 간 시간이 오후 3시5분께라고 하더라”며 “화재 신고가 3시53분이라고 하던데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불이 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송씨와 친목계를 하며 친밀하게 지냈다던 지인 10여명도 병원을 찾아 안타까움에 눈물을 흘렸다. ㄱ씨는 “송씨는 사우나에서 200m 정도 떨어진 곳에서 닭갈비 가게를 하며 성실하게 살아왔다. 때가 되면 동네 어르신들을 불러 대접도 하고, 겨울에는 연탄봉사도 했다. 이렇게 열심히 사는 사람을 하늘은 왜 데려가냐”며 가슴을 쳤다. ㄴ씨는 “좋을 일을 하면서 쉴틈 없이 정말 열심히 살았던 사람”이라고 송씨를 기억했다.

숨진 신아무개(나이 미상)씨와 부부동반모임을 통해 20여년 간 교류해왔다는 유명종(53)씨는 신씨를 “밝고 맑은 사람”이라고 했다. 유씨는 “남편과 자식 둘, 시부모까지 잘 챙기면서도 짬을 내 따로 텃밭을 가꾸던 건강한 사람이었다”며 “같은 초등학교에 다녔던 아이를 둔 학부모이자 같은 아파트 입주민이었는데 안타깝다”고 했다. 신씨는 살고 있던 아파트 근처 목욕탕이 전날 문을 닫으면서 사고가 난 사우나에 들렀던 것으로 전해졌다.

6명의 사망자가 안치된 충북 제천시의 명지병원에도 차가운 밤공기 사이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유가족들은 장례식장의 테이블에 둘러앉아 서로를 애써 위로하며 힘겹게 슬픔을 나눴다. 시신을 확인하러 가던 한 유가족은 “우리 엄마 볼 거야, 우리 엄마”라고 말하며 쓰러질 듯 오열해 주변의 부축을 받기도 했다.

21일 밤 11시10분께,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이근규 제천시장과 함께 명지병원 장례식장에 들렸다. 한 유가족은 이 시장의 손을 붙잡고 “아내가 옥상에서 ‘여보, 큰일 났어’라고 전화까지 했는데 죽어서 돌아왔다. 시신을 확인해보니 얼굴이 새카맣더라”라고 말하며 울먹였다. 다른 유가족은 김 장관에게 “불이 났는데 사다리차가 올라갔다 내려갔다만 반복했다. 애들이 고등학교 들어갔는데 엄마가 먼저 가서 어떡하냐”며 흐느꼈다. 김 장관은 “정부에서 최대한 지원하고 진상규명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명지병원 앞을 지키던 유가족 김육환씨는 “동생의 아내가 이번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며 크게 한숨을 쉬었다. 김씨는 “사우나에 목욕을 하러 간 제수씨가 동생에게 전화해 ‘밑에서 불이 나서 위로 대피하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말한 뒤 전화가 끊겼다고 한다. 그리고 그게 끝이었다”라고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김씨는 “동생은 거의 실신상태”라며 안타까워 하기도 했다.

이번 사고로 어머니와 여동생, 조카를 한꺼번에 잃은 유가족도 있었다. 명지병원 대기실에 멍하니 앉아있던 사망자 김아무개(80)씨의 며느리 ㄷ씨는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ㄷ씨는 “어머니가 오랜만에 고향에 온 딸과 수능이 막 끝난 손녀를 데리고 목욕탕에 가셨다 변을 당하셨다. 2남2녀를 장성하게 키우신 어머니가 이렇게 가실 줄은 몰랐다”고 말하며 한탄했다.

ㄷ씨에 따르면 시어머니 김씨는 사고 후인 5시 15분께 막내딸 집에 전화를 했고, 사우나에서 발견됐을 때는 겉옷을 입고 있었다. ㄷ씨는 “불이 난 게 3시50분쯤이니까 그 후에 전화를 하고 옷도 입으셨다면 대피할 시간이 있었던 게 아닌가”라고 조심스럽게 추측하기도 했다.

현재 김씨의 시신은 명지병원에, 딸인 민아무개(49)씨와 손녀 김아무개(18)양의 시신은 제천 서울병원에 안치되어 있다. 유족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가족들을 병원 한 곳에 모아달라고 요청한 상태다.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어머니도 통화가 안 되고 시누이도, 조카도 통화가 안 될 때 불길하긴 했다. 그래도 이렇게 일이 될 줄은...” ㄷ씨는 이후 말을 잇지 못했다.

제천/신민정 임재우 기자 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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