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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폐 사우나’서 유독가스 못나가 인명 피해 키웠다

등록 2017-12-21 22:48수정 2017-12-22 09:43

제천 화재, 왜 피해 커졌나
건물 외벽 화재 취약한 소재 사용
가연성 외벽 타고 삽시간 불길
1층 주차장 공사현장서 발화 추정
9층까지 번지는데 20분도 안걸려
“사우나 시설, 화생방 가스실처럼
연기·수증기 겹치면 한치 앞 안보여”
탈의상태서 대피시간 놓쳤을 가능성
2~4층 사방에 목재 탈의함 가득
대피통로 좁게하고 ‘장작더미’ 구실
21일 오후 충북 제천시 하소동 두손스포리움 화재 현장에서 소방대원들이 희생자를 구급차로 옮기고 있다. 제천/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21일 오후 충북 제천시 하소동 두손스포리움 화재 현장에서 소방대원들이 희생자를 구급차로 옮기고 있다. 제천/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21일 충북 제천의 9층 높이 복합스포츠시설 두손스포리움에서 난 불로 이날 밤 10시 현재 29명이 사망하고, 29명이 부상당했다. 지상 1층에서 난 불이 지상 9층 건물 전체로 번지는 데 채 20분도 걸리지 않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인명피해가 컸다. 이렇게 많은 인명피해를 불러온 원인은 여러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밀폐 사우나에서 다수 희생돼 화재가 난 건물 2~3층은 목욕탕(2층 여성, 3층 남성), 4~7층은 헬스클럽, 8층은 레스토랑이 들어서 있는 등 다중이용시설이다. 지은 지 10년이 채 안 되는 철근콘크리트 건물이었다.

이번 화재로 사우나가 있는 2층 목욕탕 안에 갇혀 있다가 20여명이 참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목욕탕은 완전 밀폐돼 있는 구조다. 여름에는 환기를 위해 유리창을 가끔 열지만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겨울에는 밀폐돼 있다.

한 소방 전문가는 “겨울철 사우나 시설은 출입문은 물론 유리창까지 완전히 닫아 놓기 때문에 불이 나면 화생방 훈련의 가스실처럼 연기가 빠져나갈 수 없다. 이 때문에 사우나 안에 있던 피해자들은 연기에 사실상 무방비 상태로 노출될 수밖에 없어 피해가 커졌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좁은 통로 때문에 제대로 탈출하기 어려운 것도 피해를 키운 한 원인으로 지목됐다. 이 건물은 승강기를 통해 1층으로 내려온 뒤 출입문으로 대피하거나, 비상계단을 통해 대피해야 한다. 사실상 탈출구는 출입문 1곳이다. 하지만 목욕탕 안 사방 벽면은 물론 내부에도 탈의함이 설치돼 있어 대피하기에 좁은 구조다. 게다가 욕탕은 출입문, 탈의실 안쪽에 배치돼 화재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면서 제때 대피하지 못하는 구조적 문제도 지니고 있다.

전미근 충북 증평소방서 소방경은 “대개 목욕탕이 있는 건물은 대피하기 어렵다. 연기가 발생하면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는데다 욕탕 안 수증기까지 겹치면 사실상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대부분 대피 통로도 좁아 대피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 이날 화재 당시에도 승강기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일부 대피자들은 옥상으로 올라가 구조를 요청했다. 또 일부 시민들은 난간을 잡고 구조를 기다리다가 소방서 등이 설치해 놓은 에어매트 위로 뛰어내려 목숨을 구하기도 했다.

탈의한 채 목욕을 하고 있어 대피를 위한 ‘골든 타임’을 놓쳤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한 소방대원은 “옷을 벗은 채 목욕탕에 있다가 화재 경보가 울렸어도 옷을 입고 탈출하려다 대피 시간을 놓칠 수 있다. 게다가 제천은 지금 영하의 날씨여서 옷을 챙기려고 탈의실로 나가다가 유독가스를 마신 채 질식했을 수도 있다”고 밝혔다.

21일 오후 충북 제천시 하소동 두손스포리움 화재 현장에서 소방대원들이 고가사다리차를 이용해 화재를 진압하고 있다. 제천/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21일 오후 충북 제천시 하소동 두손스포리움 화재 현장에서 소방대원들이 고가사다리차를 이용해 화재를 진압하고 있다. 제천/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질식 사망자가 많은 이유는? 이 건물은 목욕탕, 헬스장, 요가장 등이 입주해 있다. 이들 공간엔 모두 옷을 보관하거나 갈아입는 탈의실과 목재 탈의함이 설치돼 있다. 탈의함 안엔 이용자들이 벗어 놓은 옷이 보관돼 있어 불이 옮겨붙으면 진화하기 쉽지 않은 구조다. 게다가 한겨울이어서 대부분 입고 온 옷들이 탈의함을 가득 채우고 있어 이들 옷이 불쏘시개 구실을 할 수도 있다.

옥천소방서 관계자는 “목욕탕, 헬스장, 요가장 등엔 모두 탈의함이 있고, 대부분 목재로 만들어져 있다. 이 건물 또한 층층이 목재 탈의함이 설치돼 있다. 불이 나면 이들 목재 탈의함은 장작더미와 같은 구실을 할 수 있다. 장작을 쌓아둔 것처럼 얼기설기 설치돼 한번 불이 나면 제대로 꺼지지도 않고, 확산 속도는 매우 빨라진다”고 말했다.

이상민 제천소방서장은 “사실상 밀폐된 구조여서 유독가스가 상당했다. 구조대원조차 접근이 어려울 정도였다. 자욱한 유독가스로 피해가 커졌다”고 밝혔다.

이 스포츠 복합시설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와 대형마트 등이 조성돼 있는 제천의 새 도심에 설치돼 오후 시간대지만 이용객이 많았다. 평소 목욕탕뿐 아니라 테라피, 요가, 필라테스, 헬스장이 운영되고 있으며, 이들 공간엔 모두 목재 탈의함이 설치돼 있다. 대부분 이들 탈의함은 불이 나면 유독가스가 발생하는 합성목재, 접착 포장재(시트지) 등으로 제작돼 있다.

건축 마감재를 불에 잘 타지 않는 난연재를 쓰지 않아 불이 삽시간에 건물 전체로 번졌을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실제 이 건물 외벽은 화재에 취약한 드라이비트 공법으로 설치됐다. 유영진 제천시 건축허가팀장은 “건물 외벽이 드라이비트 소재로 마감된 것을 확인했다. 화재가 순식간에 번진 한 원인으로 보고 있다. 내부 마감재 등은 앞으로 살펴볼 방침”이라고 말했다.

인세진 우송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일단 2층 쪽에서 사망자가 집중됐다는 것은 구조적으로 연기를 제대로 차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방화문과 함께 연기를 차단하는 구조를 갖춰야 하는데 구조적인 결함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지상 1층 주차장이 발화지점 소방서와 경찰 등은 화재 발생 4시간여가 지난 저녁 8시가 넘어서야 발화 지점을 확인했다. 저녁 7시가 지나면서 1~3층까지의 불은 어느 정도 진화했지만 4층 이상 고층의 불은 완전 진압하지 못했다. 애초 지하에서 불이 난 것으로 알려졌지만, 1층 주차장의 용접 공사 현장에서 불꽃이 옮겨붙었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제천소방서 관계자는 “화재 원인을 추정하기 어려운 상태다. 지금은 일단 진화와 함께 건물 내부 수색에 집중하고 있다. 통상 철근콘크리트 구조 건물은 화재가 발생해도 이처럼 빠르게 건물 전체로 옮겨붙기 어려운데 특이한 상황이다. 진화·구조가 끝난 뒤 발화 지점과 화재 원인을 정밀 감식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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