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열린 촛불시위에는 정치·사회단체의 깃발이 넘쳤던 과거와 달리 새롭고 참신한 방식으로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모습이 넘쳐났다. 지난 2일 열린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집회에서 시민들이 얼굴에 가면을 쓰고 촛불집회를 하고 있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청소년 주도 온가족 참여 ‘새 집회문화’
절반이 10대 청소년…‘정부 꼬집기’ 즉석 발언·랩 쏟아져
“미래 달린 문제” 가족 참여 많아…팬클럽·동호회 거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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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달린 문제” 가족 참여 많아…팬클럽·동호회 거리로
촛불의 크기는 제각각이었다. 색도화지, 종이박스에 매직펜으로 아무렇게나 흘려 쓴 구호도 제각각이었다. 정치단체나 시민단체의 깃발도 볼 수 없었다. 대신 흥겨운 놀이와 노래, 자유로운 신상 발언이 가득했다. 지난 주말 서울 청계광장을 후끈 달군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는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모습들이 넘쳐났다.
■ 10대들이 ‘주도’ 촛불집회에 참여한 이들 가운데 절반 가량은 10대 청소년들이었다. 특히 교복 차림의 여학생들이 많았다. 학생들은 서로 발언하겠다고 나서 줄을 서 차례를 기다리기도 했다. 지난 3일 밤 청계광장에서 자유발언에 나선 김강균(18·고교 2년)군은 “0교시 허용, 촌지 합법화 등 우리가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정책들을 이명박 대통령이 내놨다”며 “점점 학교가 학원이랑 똑같게 된다”고 소리를 높였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 다니는 류 아무개(17)양은 “노무현 대통령은 실업계 특성화를 많이 시켰는데 이명박 대통령은 자사고만 늘리겠다고 한다”며 “실업계 특별전형을 없앤다는 말에 우리 학교 학생들이 다 분개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10대들의 발언 신청이 잇따르자, 주최 쪽 사회자가 “30·40대 중엔 발언할 분이 없느냐”며 ‘제지’하는 광경도 연출됐다.
집회 참가자들은 50∼100명 단위로 소그룹을 만들어 곳곳에서 자유발언을 쏟아냈다. 학생들은 마이크 대신 손을 동그랗게 말고 “미친소 너나 즐쳐드삼”과 같은 즉석 구호를 외쳤다. 한 무리의 고3 남학생들은 이명박 정부에 대한 불만을 담은 랩을 현장에서 노래해 큰 박수를 받기도 했다. 경찰 쪽 스피커에서 “집에 돌아가 달라”는 방송이 나오자, 시민들은 “경찰들도 함께해요, 사법처리 무서워요”라는 구호로 맞받아쳤다. 대학생 조은석(21)씨는 “미선·효순이 촛불집회 때는 암울하고 격정적이었는데 이번 집회는 밝고 즐겁고 힘이 난다”고 말했다. 일부 참가자들은 3일 집회 때 주최 쪽이 중앙 무대를 만든 것에 대해 “자발적인 집회인데 앞에서 너무 주도한다”고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 온 가족이 참여 가족 단위로 광장을 찾은 이들도 많았다. 아이를 목말 태우고 촛불을 든 30대 부부, 초등학생 아이 손을 잡고 나온 ‘40대 남성’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 3대가 함께 촛불집회에 참여한 가정도 있었다. 이들은 광우병·쇠고기 문제는 어느 한 세대·계층이 아닌 “온 가족 미래의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직장 다니는 딸·사위와 외손녀를 데리고 집회에 참석한 맹행일(67)씨는 “2002년 효순·미선이 추모집회 때 나온 적이 있는데, 이번에도 안 되겠다 싶어서 온 가족이 다 같이 나왔다”고 말했다. 서울 고궁 구경을 하러 왔다가 일가족 5명과 함께 촛불을 든 문아무개(48·경남 남해시)씨는 “남해에 소 농가가 참 많은데 다 죽을 심정”이라며 “사람들이 나서서 뜻을 모은 것을 애들한테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집회 분위기가 달아오르자, 가족이나 친구들한테 “빨리 청계천으로 나오라”고 전화하는 목소리도 여기저기에서 들렸다.
■ 팬클럽·동호회 ‘위력’ 인터넷 팬클럽이나 동호회 차원 집회 참석을 결의하고 ‘집단 행동’에 나선 이들도 적지 않았다. 동호회 이름이 적힌 팻말을 들고 회원들을 모으거나, “아이디 뭐예요?”라고 서로 묻는 모습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회원 수 50만명인 ‘쭉빵’ 카페 회원들은 손등에 별 표시를 하고 십여명씩 모여 앉아 ‘쇠고기 반대’를 외쳤다. 인터넷 사이트 디씨인사이드에서 활동하는 황아무개(25)씨는 “우리랑 직접 연관된 문제이기 때문에 온라인으로만 해선 안 되겠다 싶어 ‘키보드 전사들’이 직접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한 여고생은 연단에 나와 “나는 카시오페아(동방신기 팬클럽)다. 동방신기가 아픈 거, 기력 잃는 거 보고 싶지 않다”고 외쳐 여고생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동호회 사람들은 집회가 끝난 뒤 함께 뒤풀이를 가기도 했다. 송경화 김성환 기자 freehw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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