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지난 2일과 3일, 연 이틀 저녁 서울 청계천 광장에서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가 열렸다. 집회의 직접적인 발단은 물론 최근 타결된 한-미 쇠고기 협상이다. 하지만 집회의 내용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뿐 아니라 이명박 정부 전반을 불신하고 거부하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정부와 여당은 ‘정치적 선동’ 운운하며 이번 사태의 본질을 왜곡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촛불집회를 보는 정부와 여당의 시각이다. 한나라당은 논평을 통해 이번 촛불집회를 ‘반미, 반정부 세력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를 먹거리 문제와 연결시켜 공포와 불안을 조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어린 중·고등학생들과 자식 둔 어머니들까지 먹거리가 불안해지는 걸 참지 못하고 시위에 나선 것을 ‘불순한 정치투쟁’으로 몰아붙이는 것이야말로 천박한 정치 논리다.
연 이틀 벌어졌던 촛불집회에 누가 참여했고, 무슨 주장이 나왔는지를 보라. 집회를 주도한 세력은 중·고생과 대학생 등 10대와 20대였다. 중간고사가 끝난 시점이기도 하지만 이들이 이렇게 많이 참여한 것은, 자신의 일상이 침해받을 수 있다는 우려를 피부로 느끼고 이에 저항하기 위해서였다. 광우병 위험이 있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으로 자신들의 식단이 불안해지고, ‘교육 자율화’로 학교생활이 망가지는 것을 더는 참을 수 없다는 위기감이 깔려 있다.
이명박 정부 출범 뒤 내놓은 각종 정책에 대한 불만도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종부세 감면, 의료보험 민영화 움직임 등 부자들을 위한 정책에 불만을 표시했다. 국민들이 지금까지는 ‘경제 살리기’란 명분 때문에 불만이 있어도 숨을 죽이고 있었지만 이제 더는 두고 볼 수 없다는 인식을 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민심이다. 정부와 여당은 민심의 변화를 제대로 읽어야 한다. 집회 과정에서 몇몇 과장된 표현이나 구호가 나왔지만 그것이 본질은 아니다.
더욱 우려스런 것은 정부에 비판적인 움직임이 나타날 때마다 등장하는 철지난 색깔론이다. 정부와 여당은 이번 촛불집회를 마치 좌파 정권의 선동전문가들이 개입해 부추긴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자신들에게 반대하는 세력에게 ‘빨간 딱지’를 붙임으로써 합리적인 주장까지 매도하던 행태를 아직도 버리지 못한 것이다. 성난 민심을 그런 식으로 몰아붙이는 한 이명박 정부의 위기는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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