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 미군기지는 일상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이 갖춰져 있는 작은 도시다. 기지 안에 있는 주유소에서 미군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직접 자동차에 휘발유를 넣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학교·병원·아파트…빌딩 품 속 ‘81만평 미국’
청군과 일본군, 미군을 거쳐 124년만에 반환되는 용산 미군기지는 어떤 모습으로 시민들에게 돌아올 수 있을까.
반환을 앞둔 용산 미군기지는 초고층 주상복합건물들의 품에 폭 안겨 있었다. 용산미군기지로 들어가는 1번 게이트 앞은 초고층 주상복합건물인 ‘대우월드마크 용산’의 건설이 한창이었다. 공원이 들어설 메인포스트와 사우스포스트 바깥쪽은 온통 삼성·엘지·대우·롯데 등 대기업 건설사들의 이름이 크게 내걸린 건물들이 경쟁이나 하듯 위로 솟구치고 있었다.
장병·가족 1만 5천여명 생활
8·15 광복 이후 주한미군사령부와 미8군사령부가 주둔하면서 ‘용산합중국’이라는 별칭까지 붙은 용산 미군기지는 말 그대로 하나의 ‘나라’였다. 미국식 도로명이 붙은 길을 따라 잔디가 포들포들한 앞마당이 딸린 단층집과 아파트, 초·중·고교와 병원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오산과 용인으로 나가는 버스터미널까지 있어 굳이 문 밖으로 나갈 필요가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이 ‘나라’에 머무를 수 있을 듯 했다.
국제연합군사령부와 한미연합군사령부, 미8군사령부 등이 몰려 있는 메인포스트는 물론, 장병들과 가족들의 주거지역으로 쓰이는 사우스포스트에는 두 팔로도 허리를 감기 힘들 정도로 굵은 플라타너스와 느릅나무, 소나무들이 진한 향을 내뿜고 있었다. 김영규 주한미군 공보관은 “사우스포스트 쪽은 훨씬 자연환경이 잘 보존돼 있어 꿩이나 다람쥐를 쉽게 만날 수 있다”고 전했다. 국제연합군사령부 건물 뒤편엔 이태원과 남산3호터널쪽에서 흘러오는 실개천이 정화되지 않은 채 흘러 악취를 풍겼지만 그래도 호박잎이 덩굴지고 온갖 들꽃들이 다퉈 피고 있었다. 복원 예정인 81만평 미군기지 안에는 현재 주둔병력과 그 가족 등 1만5천여명이 생활하고 있다. 자연환경이 잘 보존된 서울 한가운데 금싸라기땅을 1명당 54평꼴로 써온 셈이다.
외국 군대 주둔 124년 동안 잊혀졌던 ‘역사’들도 속속 모습을 드러냈다. 얼마 전 캠프코이너 동쪽의 소구릉 지역에선 조선시대 제천행사를 열었던 남단 터와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문인석 10여기가 발견돼 문화재청이 조사를 벌이고 있다. 일제시대 일본군 사무실로 쓰였던 붉은 벽돌 건물은 미8군사령부로, 군용 감옥이 있던 것으로 추정되는 감옥터는 의무시설물로 사용되고 있었다. 기지 반환 뒤 활용계획 수립에 앞서 정확한 실태조사가 필요하다.
6만 6천평은 반환대상서 제외
용산미군기지 전체가 공원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용산공원의 정수리가 될 캠프코이너는 미국 대사관(2만4천평) 자리로, 공원 심장부의 드래곤힐 호텔(2만5천여평)은 미군 서울주재사무소로 쓰이는 등 총 6만6천평이 반환대상에서 제외된다. 용산공원특별법에서 사우스포스트·메인포스트를 공원으로 한다고 못박아도 81만평 중 74만4천 평만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다. 서울시 조성일 도시계획과장은 “핵심부지는 여전히 미군 땅인 셈”이라고 말했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왼쪽 끝에 보이는 최신식 주상복합건물과 대비를 이루는 용산 미군기지 안 일제시대 건물 앞으로 10일 오후 미군 병사들이 걸어가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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