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양호 보고펀드 대표가 지난 6월14일 밤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 시절 전 안건회계법인 대표 김동훈(58·구속)씨한테서 2억원을 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뒤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 “공사구분 못하고 조직적 증거인멸” 격앙
재경부 “무리한 수사로 위기감 느껴 꼬투리 잡기”
재경부 “무리한 수사로 위기감 느껴 꼬투리 잡기”
검찰과 재정경제부 간의 갈등이 심상치 않다. 두 기관은 한국사회의 대표적인 파워엘리트 집단으로 법조계와 금융계를 상징한다. 지난 14일 현대차 로비사건 관련 공판정에서 변양호 전 재경부 금융정책국장(뇌물수수 혐의로 구속상태)을 둘러싸고 벌어진 증거인멸 논란은 빙산의 일각이다. 검찰과 재경부의 갈등은 변씨의 개인적 명예를 넘어 두 기관의 ‘체면’이 걸린 것은 물론, 외환은행 헐값매각 의혹이라는 론스타 사건 수사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어 관심을 모은다.
재경부 ‘조력’에 검찰 격앙
변씨의 알리바이 공방은 지난 2일 공판에서부터 시작됐다. 변호인 쪽은 변씨의 일정이 담긴 피디에이(PDA) 파일을 단서로, 뇌물을 받았다고 알려진 2001년 7월12일 변씨가 찍힌 국회 비디오를 확보했다. 허를 찔린 검찰은 이 두 증거를 모두 재경부 직원들이 확보해준 사실에 격앙됐다. 검찰은 직접 국회 관계자들과 재경부 직원들을 추궁해 이런 사실을 확인했다. 재경부 관계자도 “국회로 직원을 보내 비디오를 받았다”고 시인했다. 파일이 담긴 컴퓨터를 넘겨준 사실도 인정했다. 변씨의 변호인인 노영보 변호사는 “이 과정에서 재경부 직원 20여명이 검찰에 불려가 ‘구속하겠다’는 협박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검찰 관계자는 “경위 파악을 위해서 서너명을 불렀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검찰은 지난 10일 검사, 수사관, 전산전문가 등 30여명을 과천 재경부 사무실로 보내 8시간에 걸쳐 관련자료를 싹쓸이해 갔다. 검찰의 공식 명분은 외환은행 사건 관련 자료를 조사하고자 ‘임의제출’ 형식으로 자료를 확보했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재경부 관계자는 “사실상 압수수색 성격이어서, 충격을 넘어 공황상태”라며 “자료협조 정도로 말해 놓고는 개인 이메일까지 다 가져갔다”고 말했다. 그는 “외환은행 건을 철저히 수사하기 위해서라지만 변 국장에 대한 무리한 구속수사로 위기감을 느낀 검찰이 다른 꼬투리를 잡아 재경부를 압박하려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조직적 증거인멸’이냐 ‘검찰의 무리수’냐
검찰은 14일 저녁 현대차 로비 공판에서 작심한 듯 “재경부 직원들이 변씨의 컴퓨터를 넘겨주면서 피디에이 파일을 제외한 파일을 모두 삭제했다”고 재경부를 비난했다. 재경부 관계자는 “컴퓨터를 넘겨준 것은 사실이지만 증거를 조작하거나 불리한 파일을 지우지 않았다”며 “검찰에서 복구해 보면 알 거 아니냐”고 반박했다. 노 변호사는 “검찰이 수사가 궁지에 몰리자 언론플레이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검찰 관계자는 “지금 삭제된 파일을 복구 중”이라며 “변호인이 법원을 통해 증거신청을 하면 되는데, 국가재산을 사적으로 유출한 게 문제”라고 말했다. 현재 이 컴퓨터는 검찰이 보관 중이다.
재경부 직원들이 변씨를 도운 것에 대해선 시각이 엇갈린다. 재경부 관계자는 “변 국장의 무죄를 확신하기 때문에 돕고 있다”며 “법적, 도덕적 판단은 법원에 맡기겠다”고 말했다. 검찰 관계자는 “국가 기물을 공사 구분도 못하고 외부로 반출한 게 옳은 일이냐”며 “인간적으로 이해는 하지만 도를 넘어섰다”고 말했다. 그는 “재판에서 재경부를 비판한 건 ‘룰이 있고 원칙이 있으니 이를 지키라’고 경고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재경부 안팎에서는 변씨 건을 검찰의 외환은행 수사와 연관지어 보는 이들도 많다. 재경부 관계자는 “변 국장 사건이나 외환은행 사건 모두 대검 중수부에서 맡고 있는데, 중수부로서는 둘 다 안 풀려 초조해하는 것 같다”며 “검찰으로선 외환은행 사건에는 협조를 안하면서 변 국장 변호를 위해 열심히 뛰는 재경부가 못마땅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선희 김태규 기자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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