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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취재뒷얘기] ‘시장이 관사비품 싹쓸이’ 어떻게 취재했나

등록 2006-08-14 22:17수정 2006-09-01 08:58

퇴임하는 시장이 공금으로 구입한 관사 비품을 싹쓸이로 실어갔다는 한겨레 보도가 나간 뒤, 오산시 홈페이지는 한바탕 난리를 치러야 했다.
퇴임하는 시장이 공금으로 구입한 관사 비품을 싹쓸이로 실어갔다는 한겨레 보도가 나간 뒤, 오산시 홈페이지는 한바탕 난리를 치러야 했다.
<한겨레> 단독보도한 “오산시장 퇴임시 관사살림 싹쓸이” 그 이후
인구 13만여명의 조용하고 아담한 도시인 경기 오산시. 이 조그만 도시가 8월의 폭염 속에 박신원 전 시장의 퇴임 뒤 관사 물품 ‘싹쓸이’를 놓고 ‘낯뜨거운 일’이라는 시민들 분노와 ‘전임 시장 흠집내기’라는 반박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한겨레>는 지난 11일치에 경기 오산시가 시장직을 물러나면서 관사 물품을 ‘싹쓸이’해 간 박신원 전 시장에게 해당 물품의 환수 조치에 나섰다는 등의 내용을 단독 보도했다. 10일 저녁 <인터넷한겨레>에 기사가 실리자 오산시청 홈페이지에는 곧바로 사실 여부를 묻는 네티즌의 글이 떴다.

이 네티즌은 “장롱·비데·다리미까지…시장 물러나며 관사 물품 ‘싹쓸이’가 사실인가요”라고 묻고 “(사실이라면) 기가 찰 뿐”이라고 자탄했다. 그는 “국민 세금으로 다리미까지 구입했다는 것도 어이가 없지만 5만원짜리 다리미를 개인이 함부로 가져갔다는 것에 더 할 말이 없다”고 했다. 허탈감은 그러나 서곡에 불과했다.

지역언론 “시장관사 전세계약권 임의해지” 기사 실마리로 ‘추적’ 나서

기자가 전임 시장의 ‘싹쓸이’건에 관심을 갖게된 것은 지난달 “새로 취임한 시장도 모르는 사이에 시장 관사의 전세계약권이 임의로 해지돼 오산시가 경위 파악에 나섰다”는 한 지역언론의 보도였다. 전세계약권의 해지 경위가 궁금했던 기자는 이후 오산시의 조사 과정을 추적했다. 이 과정에서 보름 정도 지난 최근에서야 오산시의 감사가 끝났으며 경기도에 관련 공무원 3명의 징계가 건의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오산시의 자체 조사 결과 보고서를 단독으로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보고서는 관사 부동산임대계약을 해지한 경위에 대해 “시장 의사를 확인하거나 부서장의 결재없이 담당 공무원이 임의로 전세권 해지 동의서에 시장 직인을 날인했다”고 되어 있었다. 보고서를 그대로 원용한다면 시민들이 선택해 뽑은 시장도 모르는 사이, 시장의 직인이 도용되어 사용됐다는 참으로 ‘황당무계’한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전세 계약’ 해지 다룬 시 조사보고서에 기자의 관심 끄는 항목은
‘시장 관사내 생활용품 등 구입 및 처분에 대해서’

그러나 조사 보고서에는 기자의 관심을 더 끈 항목이 있었다. 이른바 ‘시장 관사내 생활용품 등 구입 및 처분에 대해서’라는 것이었다. 총 87종의 시장 관사 비품 중에서 8종 만이 회수됐을 뿐, 나머지 79종은 회수되지 않은 채 박 전 시장이 가져갔다는 것이었다.

구입가격을 기준으로 해서 67만1천원짜리 비데와 110만원짜리 소파, 75만원짜리 카펫트, 130만원짜리 장롱을 비롯해 5만5천원짜리 다리미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물론 3500원짜리 대야는 물론 2500원짜리 옷걸이와 바지걸이, 11만원짜리 수저세트와 8000원짜리 수저통 등을 비롯 각종 일상 생활용품도 포함된 말 그대로 ‘싹쓸이’였다.

이들 관사 비품은 오산시가 2003년 3월 2791만원을 들여 구입한 87종의 생활용품에 포함된 것으로, 이들 비품을 불용처리할 경우 시장의 결재를 받아서 불용 매각 처분을 하도록 시 물품관리조례상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물품관리조례는 ‘(박신원 전) 시장이 ‘관사에 비치되어 있던 생활용품 중 계속 사용할 수 있는 물품을 확인해 보라’는 지시와 ‘전 시장이 계속 사용해도 되느냐’는 말 한마디에 ‘그러시죠’라는 담당 공무원의 말로 휴짓조각이 됐다. 시 담당 공무원들은 여기에다 공공운영비 등으로 편성된 일반운영비 93만5천여원을 관사 물품을 실어나를 이사비로 쓰는 등 보고서는 우리의 자치수준이 이것밖에 안되나 하는 의문을 불러왔다.

1백만원대 소파·장롱은 물론 2500원짜리 옷걸이까지 ‘싹쓸이’
2800만원 들인 물품 몽땅…공금 93만5천원은 이들 물품 나를 이사비로

기자는 오산시청에 이를 다시 확인했고 이 과정에서 “해당 물품의 회수를 새 시장이 지시했지만 회수를 하지 않고도 회수했다는 허위 보고를 한 사실도 있었다”는 사실을 추가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이같은 사실이 <한겨레>에 보도된 직후인 12일, 중앙의 각 언론사와 방송사들은 ‘관사 안 뜯어간 것 만도 다행?’ 등의 잇따른 보도를 했다. 언론보도로 사태가 확산되면서 오산시청은 마치 ‘벌집을 건드린 듯’ 했다. 시청 홈페이지에는 분노와 실망을 드러내는 시민들의 글들이 쇄도했고 조회 건수만도 무려 5천여회를 훌쩍 넘어버렸다.

“진짜 해도해도 너무한다”는 네티즌에서부터 “5만원짜리 다리미까지 챙겨갈 알뜰한 정신이면 그동안 임기하실 때 어떻했을지 상상됩니다”고 네티즌들은 흥분했다. 일부 네티즌은 “오산시민으로서 창피하다”거나 “도대체 관사물건을 왜 집으로 다시 수거해가셨는지 모르겠네요, 그리고 그걸 가져가도록 해 준 관련 공무원도 참 이상하네요. 국민 세금으로 산 관사 물건인데 다 반납해야 할 것 같네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겨레> 기사 나가자 타 언론 뒤따라 보도… 오산시청 “벌집 쑤신 듯”

사태가 일파만파로 확대되자 시 관계자는 “시청 홈피가 이렇게 달아오른 것은 처음”이라며 “사태가 이처럼 커질 줄은 미처 몰랐다. 놀랬다. 이제는 더 사태를 악화시키지 않았으면 한다”고 정중하게 추가 보도의 자제(?)를 요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와 달리 “분명 현 오산시장의 전임 오산시장 흠집내기”라는 격렬한 반응들도 제기됐다. “흠집내기를 하려면 분명한 팩트(사실)에 입각하여야 하고, 이를 확대 재생산해야 하는데, 그게 딱 걸렸다”며 이른바 ‘정치적 음모론’을 강하게 제기했다.

박 전 시장의 한 측근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지난 총선에서 한나라당 오산시 국회의원 후보를 추천해달라는 손학규 경기지사의 요청을 받고 이기하 현 시장을 추천한 당사자가 박 전 시장”이라며 “나이도 20년 아래인데 현 시장이 물러난 정치 대선배에게 이럴 수 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도의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전 시장 해명서 “공무원 자문 결과 ‘가져가도 된다’는 답변 따랐는데…”

박신원 전 시장 역시 <한겨레>에 보낸 해명서에서 “물의를 빚은 것에 대해 사과를 드린다”면서도 “비품의 규모와 종류는 물론 어디에 보관되어 있는 지도 모르고 당시 공무원들에게 자문한 결과 쓰시던 물건들이고 하니 그냥 가져가셔도 될 것 같다는 답변이 있어서 이삿짐에 실은 것으로 추측된다”고 해명했다. 박 전 시장은 “비품들을 개인 욕심에, 가져간 것 처럼 포커스를 맞춰서 전말이 왜곡되는 것 같다”며 불편한 심기를 강하게 내보였다.

실제로 자민련 출신이던 박 전 시장은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과 자민련의 합당으로 이 현 시장과 치열한 공천경쟁을 벌였고 경쟁에서 탈락한 박 전 시장은 무소속으로 지방선거에 나섰다가 이 현 시장에게 고배를 마셨다.

정치적 관계를 떠나서 박 전 시장과 이 현 시장은 오산지역에서 중학교 선·후배이며, JC 선후배 관계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지역에서 정치적 경쟁관계이던 전·현직 시장 간의 관계를 놓고 ‘정치 음모론’이 솔솔 나오는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인 듯 하다.

그러나 이 현 시장쪽은 이런 ‘정치 음모론’을 일축하고 있다. 이번 사안의 본질은 “공무원들이 시 예산을 주머니의 쌈짓 돈 처럼 여기는 안일함과 시 예산으로 사들인 것을 자신의 물품처럼 여기는, 공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자세가 더 큰 문제”라고 딱 잘라말했다. 민선4기에 이른 만큼, 이제는 풀뿌리 지방자치도 한점 의혹 없이 투명하고 공정한 예산집행을 통해서 시민들의 신뢰를 얻어가는 일이 중요하지, 이를 정치적으로 호도해서 자신의 잘못을 감추려고 해서는 결코 안된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는 설명이다.

전 시장과 현 시장간의 갈등서 비롯한 ‘음모론’ 시각도

오산시의 한 고위 공무원은 이와 관련해 “단체장 이·취임 등과도 시기에 공무원들이 원칙대로 일을 처리했으면 될 것을 안이하게 대처하는 바람에 지역 사회가 동요하고 논란이 양산되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한탄했다. 사태가 확산되자 박 전 시장은 14일 마침내 오산시에 관사 물품을 돌려주겠다는 의사를 공식적으로 전달했다.

박 전 시장의 반환의사 통보로 사태는 일단락되는 듯하다. 그러나 이번 사안을 통해 좌절과 실망을 느낀 것은 음모론을 둘러싼 논쟁의 당사자들 보다 오히려 이를 지켜본 시민들이었다. 성숙한 시민의식을 쫒아가지못하는 공무원 사회의 자기반성과 공정하고도 투명한 지방자치를 기대하는 시민들의 바람을 희망과 신뢰로 바꿔내야 하는 것, 그것이 이번 파문이 남긴 숙제가 아닐까.

오산/<한겨레> 홍용덕 기자 ydh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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