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열리고 있는 서울 종로구 필운동 배화여고에서 점심시간을 맞은 학생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한겨레> 김봉규 사진기자가 고사장에서 보고 느낀 것들
지난 16일 60만여명의 수험생들이 새벽 칼바람을 맞으며 수능시험장으로 달려가 학력이란 전쟁터에서 예선전을 치렀다.
사진기자인 나도 이날 아침 5시30분 일찌감치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싣고 수능 현장을 취재하려고 서울 종로구 필운동의 배화여고로 나섰다. 선배들을 응원하러 나온 후배들의 응원과 북소리가 수능 시험장 아침의 긴장감을 활기로 덥히고 있었다.
처음 수능 현장취재를 시작했던 90년대초와 비교하면 시험장 분위기가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학교 벽과 정문에 엿판을 붙이는 일이 줄어든 정도랄까.
제1교시 입실시간인 8시께 시험장을 취재(수험생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는 안된다. 사진과 비디오 촬영만 가능하다)하려고 한 고사장에 들어갔다.
수험생들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핸드폰과 엠피쓰리 등 시험시간에 휴대할 수 없는 전자기기를 감독관에게 제출했다. 그렇지만 잇단 당부에도 불구하고 수험생 26명은 이런 휴대품을 신고하지 않아, 시험 자체를 보지 못하고 0점 처리되었다.
수능 시험장을 취재하는 것은 여느 현장과 비교할 수 없이 팽팽한 긴장감이 흐른다. 아무리 한번의 시험일 뿐이라고 해도, 자신의 인생을 좌우하는 가장 큰 시험대에 선 학생들은 온 몸으로 그 팽팽한 긴장을 보여준다.
사진기를 보고 놀라는 학생들, 아랑곳하지 않는 학생들
일은 일이다. 카메라를 긴장한 수험생들 얼굴에 들이대기 시작한다. 한 학생은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소스라치게 놀라며, 작고 앳된 손가락으로 얼굴을 감싸버린다. 사진기자는 그 장면을 놓치지 않는다. 망원렌즈를 통해 잡힌 학생들의 섬세한 움직임과 표정 하나 하나를 담았다.
하지만 어떤 수험생들은 시험지와 답안지 빼고는 아무 것도 보이고 들리지 않는 듯한 표정이다. 카메라의 셔터소리나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는 기자들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듣기평가가 시작되기 전 기자들은 교실과 시험장 주변에서 반드시 나와야 한다. 매년 기자들이 찾는 서울 중심가의 이 학교는 그나마 취재진에 융통성을 보이는 곳이다. 언론을 경험하지 못한 학교를 가보면 아무리 ‘취재용’이라고 강조해도, 교실에서 쫓겨나기 십상이다.
16일 시험 당일 취재가 허용된 시간이 지나도 기자들이 교실을 나가지 않자 관계자들이 나서서 기자들을 밖으로 내보냈다. 비로소 교실은 여느 수험장다운 모습이 되었다.
교실을 나선 뒤 자식을 수험장에 들여보낸 어머니들의 모습을 취재하려고 교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올해는 여느 해와 다르게 교문 앞을 지키는 어머니들의 모습이 단촐해 보였다 한쪽 구석에서 한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며 애절한 표정으로 마음을 다스리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많은 기자들이 그 어머니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사진 기자들은 쉴 새 없이 셔터를 눌러댔다.
기자들은 셔터를 누른 뒤 곧바로 이름부터 물어본다. 취재에 필수적인 요소이기도 하지만, 왜 허락도 없이 사진을 찍었느냐는 초상권 문제를 제기할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어적 동작 때문이기도 하다.
기자가 시험보던 20여년 전 그날엔 눈이 내렸다
몇 컷의 취재를 마친 덕에 한숨을 돌리게 되자, 내가 취재했던 수험생 부모의 마음이 되어보기도 한다. ‘자식이 시험을 실수없이 잘 보라는 기도도 내맘대로 못한다는 말인가?’ 몇몇 부모들은 기자들의 방해가 없는,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두 손을 모은 채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오전 취재 마감을 위해 취재차량에 몸을 실었다. 따뜻한 차량 안으로 들어서자 입시추위 속에서 오전 내내 얼어 있던 몸이 스르르 녹아내렸다. 눈이 감겼다. 시험장에서 긴장되어 있던 수험생들의 토끼같은 얼굴과 교문 밖에서 눈물을 흘리던 한 어머니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20년도 지난 일이다. 내가 대입시험을 치르던 그 때(당시는 학력고사였다)가 아련히 떠올랐다. 새벽에 함께 밥을 먹고 아들과 함께 수험장으로 나선 어머니, 시흥의 한 학교에서 시험을 치르고 있는데 그날 서울은 눈이 내렸다. 그 눈 속으로 언덕 위에 떨고 계시는, 지금은 저 세상에 계시는 어머니가 생각이 났다.
회사로 돌아와, 오전 취재 마감을 마친 뒤 점심시간에 잠시 허용된 취재를 위해 다시 오전의 고사장으로 갔다. 학생들은 긴장이 아니라 지친 표정이었다. 지난 수년간 노력해온 것을 몇시간 동안 쏟아붓느라 그들은 파김치가 되어 있었다. 점심시간을 맞아 수험생들은 집에서 가져온 도시락을 열고, 천천히 그리고 힘겹게 밥알을 입에 넣고 있었다. 안쓰러웠다. 카메라를 들이대려니 마음이 무거웠다.
생생한 인터뷰 위해 소란스러워진 수능 고사장
그런데 교실 안이 소란스러워졌다. 일생일대의 승부처에서 혼신의 정성을 쏟아낸 뒤 식사를 하며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학생들 사이를 헤치며 방송사 취재팀들이 조명과 카메라, 마이크를 들이대며 학생들에게 뭔가를 요구하는 까닭이었다.
취재를 마치고 나오는 그들에게 조심스럽게 충고성 항의를 했다. “어떻게 저렇게 지쳐 있는 학생들에게 마이크와 카메라를 들이댈 수 있느냐”고.
“미안하다. 죄송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방송사 취재팀들은 총총히 그 곳을 빠져나간 뒤 교실 밖에서 또 다른 학생들을 부여잡고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날 시험이 끝난 뒤엔 기자들의 수험장 출입을 막아달라는 항의성 요구가 기사화 되었다.
‘서울특별시교육감 직인’이 찍혀 있는 ‘대학수학능력시험 시험장 출입증’에는 제1교시 시작 전인 20분과 점심시간인 12시30분부터 오후 1시까지 교실 밖에서만 취재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렇다고 내가 교실 밖에서 사진취재를 했다고 마음이 편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 자신도 자유롭지 못하다. 햇병아리 기자시절 읽은 <취재윤리와 도덕성>이란 책에는 다양한 나라 매체의 보도준칙과 취재윤리가 자세히 소개돼 있다. 그중에는 “기자는 연극에서 배우도 아니고 관객도 아닌 제3자가 되어야 한다”고 충고한다. 그 말은 ‘싸움(?) 현장’에 출연해 더욱 격렬한 싸움판으로 변하게 하는 기자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나름대로 조심성을 가지고 취재에 임하고 있지만, 이 지적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스스로 답하기는 어렵다. 기자들보다 한참 어린 학생들을 상대로 ‘업무상 필요’를 앞세워 취재윤리와 도덕성을 무시했다는 것이 편치 않았다. 시험의 난이도와 수험생의 표정을 누가 빠르고 생생하고 보도하느냐 하는 것보다 어린 학생들이 방해받지 않고 시험을 보고, 마음놓고 밥 먹을 수 있는 권리가 훨씬 중요한 것이라고 믿는다.
<한겨레>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내 앞에 놓인 길 200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필운동 배화여고 시험장에서 학생들이 긴장한 표정으로 시험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필운동 수능시험장인 배화여고에서 한 수험생 어머니가 손을 굳게 잡은채 기도를 올리고 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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