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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칠성파는 해운대, 신20세기파는 남포동, 영도파는…”

등록 2006-07-25 18:37수정 2006-07-26 10:32

사행성 성인오락기 350여대가 지하 1층에서 지상 2층까지 빼곡히 들어서 있는 부산시 중구 남포동 ㅇ오락실은 24일 오후 빈자리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성업하고 있다./특별취재반
사행성 성인오락기 350여대가 지하 1층에서 지상 2층까지 빼곡히 들어서 있는 부산시 중구 남포동 ㅇ오락실은 24일 오후 빈자리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성업하고 있다./특별취재반
[비상등 켜진 도박 공화국] ① 조폭, 부산 오락실 점령하다
‘유혹의 덫’ 기업형 관리 수천억대 주무르며 부활
성인오락실 1만5천여곳, 성인피시방 4천여 업소 등 온나라 곳곳에서 청장년층은 물론 60대 노인까지 ‘일확천금’ 미끼를 내걸며 유혹하고 있다. 업소당 10명씩만 잡아도 하루 20만명이 사행성 오락으로 밤을 지새는 셈이다. 전국의 성인오락실과 피시방의 하루 판돈은 적게 잡아도 1천억원대에 이른다. 사회 양극화의 폐해를 자양분 삼아 ‘독버섯’처럼 확산되고 있는 불법 도박산업의 실태를 몇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영화 <친구>로 유명한 국내 최대 폭력조직인 부산 칠성파와 신20세기파는 물론, 서면파·유태파·영도파 등 부산 지역 주요 ‘조폭’(조직 폭력배)들이 성인오락실 사업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오락실 운영과 상품권 공급·환전, 오락기 제조 등 연간 수천억원대의 이권을 둘러싼 조폭들 사이의 피 튀는 싸움과 ‘상생’을 위한 합종연횡이 끊이지 않고 있다.

25일 부산경찰청 집계로, 현재 부산에는 성인오락실 809곳이 등록돼 있다. 하지만 부산지검은 이 오락실들 대부분이 불법영업을 하고 있으며, 등록되지 않은 것까지 합하면 부산지역에 1천여곳의 성인오락실이 성업 중이라고 보고 있다. 2003년 10월 <한겨레>의 ‘부산지역 성인오락실 검·경 상납비리 보도’와 뒤따른 검·경의 대대적 단속으로 부산 주요 지역 성인오락실들의 휴·폐업이 잇따른 지 3년 만의 일이다. 남포동의 오락실 업주 ㄱ아무개씨는 “성인오락실업은 2004년 여름부터 다시 살아나기 시작해 지난해 초엔 이전 수준을 완전히 회복했다”고 설명했다.

최근 검찰과 경찰은 거리에 펼침막까지 내걸며 사행성 불법 오락 단속을 부쩍 강화하고 있지만, 그 결과는 신통치 않다./특별취재반
최근 검찰과 경찰은 거리에 펼침막까지 내걸며 사행성 불법 오락 단속을 부쩍 강화하고 있지만, 그 결과는 신통치 않다./특별취재반
부산서만 알짜 100여곳 직영 오락상품권 시장 50% 장악

최근 잦아진 경찰의 단속을 비웃기라도 하듯, 부산·경남 곳곳에서 새로 문을 여는 오락실의 광고 펼침막과 전단지를 쉽게 접할 수 있다. 국내 최대의 성인오락실 밀집지역인 남포동에는 1·2·3층에 오락기를 600대나 갖춘 초대형 성인오락실까지 개업을 눈앞에 두고 있다.

특히 2005년 이후 성인오락실 시장엔 조폭들의 진출이 두드러지고 있다. 지난해 이후 부산·경남의 도시지역에 새로 생긴 대형 오락실은 거의 조폭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게 검찰과 오락실 업계 관계자들의 얘기다. 부산시내 성인오락실 가운데 칠성파·신20세기파·서면파·유태파 등 부산의 주요 조폭들이 직접 운영하는 오락실만 100여곳에 이르는 것으로 이들은 추산한다. 조폭의 직영 업소는 3년여 전 30~40여곳 수준에서 갑절 넘게 늘어난 셈이다. 단순히 보호비 명목의 금품을 갈취하던 수준을 벗어나 조폭들이 오락실·상품권 유통업을 직영하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한 것이다.

2년째 부산지검에서 조폭 수사를 맡아온 한 검사는 “‘조직’의 중간 보스급은 거의 다 불법 성인오락실을 운영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며 “특히 이들 업소는 규모도 크고 위치도 좋은 ‘알짜’ 업소인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남포동의 한 오락실 업주는 “칠성파는 해운대와 광안리, 신20세기파는 남포동, 영도파는 영도지역 등 조폭마다 자신들의 영역에서 오락실을 20여곳씩 운영하고 있고, 상품권 환전은 조폭들이 부산 전체 시장의 50% 가까이 점령하고 있다”고 말했다. 상품권 유통업체의 한 간부는 “조폭들이 알짜업소 100여곳의 경영과 상품권 취급을 통해 상품권 환전으로만 매달 200억원 가량을 벌어들이고 있다”며 “얼마 전부터는 조폭과 연계한 일본계 자금까지 성인오락실 시장으로 유입되고 있다”고 말했다.


특별취재반 society@hani.co.kr




오락실 옆 조폭 이권 따라 혈투

지난 1월20일 오전 7시 부산 금정구 청룡동의 장례식장에 손도끼, 회칼, 야구방망이 등을 손에 든 사내 50여명이 들이닥쳤다. 이들은 곧바로 한 빈소를 지키던 조아무개(27)씨 등 4명을 집단 폭행하고 영정과 기물 등을 30여분 동안 닥치는 대로 부순 뒤 달아났다. 장례식장은 아수라장으로 변했고 다른 빈소의 조문객 200여명은 공포에 질려 대피했다.

수사 결과 이 사건은 부산 최대 조폭인 칠성파를 노린 신20세기파가 유태파, 영도파와 연합해 벌인 일이었다. 이 사건으로 세 조직의 조직원과 추종세력 52명이 구속됐다. 이 사건을 지휘한 부산지검 마약·조직범죄수사부의 한 검사는 “칠성파가 2005년께부터 성인오락실 사업에 본격적으로 진출하면서 이 사업의 엄청난 이권을 둘러싼 조폭들 사이의 갈등이 폭발한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부산 조폭들 가운데 가장 먼저 성인오락실 사업에 눈을 뜬 것은 신20세기파였다. 지난 2003년 <한겨레>의 ‘부산 성인오락실 검·경 상납비리 사건’ 보도와 뒤이은 검·경의 강도높은 수사로 신20세기파는 두목 ㅇ아무개(56)씨 등이 구속되는 등 큰 타격을 입었다. 당시 73곳의 오락실이 폐업하고 246곳이 휴업했다.

이런 힘의 공백이 생기자, 그 때까지만 해도 성인오락실 사업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칠성파가 본격적으로 성인오락실 사업에 뛰어들었다. 한 상품권업체 간부는 “신20세기파가 위축된 사이 칠성파가 진출하면서 부산 오락실의 판도가 변했다”며 “남포동과 서면 등 대표적인 오락실 밀집지역뿐 아니라 시 외곽지역이나 인접한 위성도시 등 경남 일대까지 칠성파가 진출했다”고 말했다.

칠성파, 신20세기파, 서면파 등 주요 조폭들은 물론 유태파·영도파 등 군소 조폭들까지 일제히 돈줄을 성인오락실로 돌리면서 오락실 운영과 상품권 환전 등 이권을 빼앗고 지키기 위한 피튀기는 ‘조폭 전쟁’도 불가피했다. ‘장례식장 난동’도 그 중의 하나다. 앞서 지난해 8월엔 신흥 유흥가인 사하구 하단오거리에서 반칠성파인 하단연합파 조직원들이 ‘상품권 환전 이권’을 놓고 칠성파 추종 폭력배 오아무개(22)씨의 귀를 자르는 일도 벌어졌다. 그러나 조폭이나 오락실·상품권 업계의 사정 상 검·경이나 언론에 드러난 이들 사건들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게 일반적 관측이다.

부산 조폭들의 이런 ‘성인오락실 점령’ 과정에는, 유명 성인오락기 제조업체인 ㅇ사의 구실이 눈길을 끌고 있다. ㅇ사는 대당 400만~500만원씩 파는 오락기를 조폭들한테는 제작원가인 200만원 대에 팔았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실제 조폭들의 성인오락실에는 ㅇ사의 제품이 대거 유입됐다고 검찰은 보고 있다. 조폭들이 싼 값에 산 오락기로 직접 오락실을 운영하며 떼돈을 벌기도 하고, 일반 오락실 업주들한테 되팔아 차익을 챙겨왔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부산지검 마약·조직범죄수사부(부장 정중택)는 지난 11일 이 업체의 부산 본사와 공장, 이 업체의 기계로 영업해온 남포동과 서면 등지의 ㅋ·ㄹ·ㄷ오락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이들 오락실은 신20세기파와 서면파가 운영하는 곳들로 검찰은 보고 있다. 검찰은 “ㅇ사와 조폭들이 승률을 조작할 수 있는 오락기를 원가 수준의 헐값으로 주고받아왔다는 의혹을 확인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업체 쪽은 검찰 수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24일 이 업체의 판매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제품구입을 문의해봤더니 “(검·경이 단속·수사를 해도) 기계는 여전히 유통되고 오락실들은 영업 잘 하고 있지 않으냐”며 “8월 초까지 (검찰이 압수한 기종과 같은) 오락기 60대를 보내줄 수 있다”고 장담했다. <한겨레> 특별취재반 socie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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