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정씨가 ‘추적60분’에 보내온 편지들. 출처 : ‘추적60분’ 홈페이지.
마약운반 혐의로 체포돼 1년반 감옥…무혐의 드러났는데 정부 보호외면
지난 5일 <한국방송> ‘추적60분’이 마약운반 혐의로 프랑스에 1년6개월간 갇혀 있는 주부 장미정(38)씨의 사연을 소개한 뒤 외교통상부와 국외대사관의 재외국민 보호 업무가 도마에 올랐다. 지난 2001년 중국내 한국인 신아무개씨의 사형집행 사건, 2003년 이라크 무장단체에 납치돼 피살된 고 김선일씨 사건에 이어 세번째다. 그때마다 외교통상부는 영사 업무 개선 등 재외공관의 대국민 보호서비스를 강화 등의 수습책을 발표했다.
“ 영사민원 서비스 수요 증대에 대응하고,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가 추진 중인 대국민 서비스 강화 정책에 부응하기 위해 인터넷을 통한 영사민원서비스, 수감자 및 사건사고 데이타베이스 확충 및 재외공관-본부-관계부처간 통합정보관리체제 구축 등 영사민원 서비스를 효율화하기 위한 종합적인 정보화 시스템인 ‘ⓔ-Consular Service'를 도입하기로 했다”(2003년 7월29일, 외교통상부 보도자료)
“김선일씨 피살사건 뒤 외교부에 쏟아졌던 엄청난 비난 중 일부는 매우 타당한 것이었고, 많은 자책과 반성, 개선의 노력을 시작하는 계기가 됐다. 무엇보다 우리 직원들이 국민 여러분을 대하는 태도가 많이 달라졌다. 외교부와 재외공관의 모든 직원들은 모든 일을 국민의 편에 서서 최대한의 봉사를 하겠다는 자세로 임하고 있다”(2005년 6월 외교부 영사국장)
방송에 보도된 장씨는 여섯살 아이의 평범한 엄마다. 2004년 10월 10여년 동안 가족처럼 지낸 남편의 후배가 원석이 담긴 가방을 운반해주면 400만원의 수고비를 준다는 말에 비행기에 올랐지만 프랑스공항에서 검거됐다. 가방 안에는 17kg의 마약이 들어 있었고, 그녀는 현재 파리에서 9시간 떨어져 있는 대서양의 마르티니크라는 외딴 섬에 갇혀 있다. 그 사이 체중은 37kg까지 빠졌고, 탈모증상에 수면제 없이는 잠도 청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하지만 장씨는 외교부나 프랑스주재 한국대사관으로부터 어떤 도움을 받지 못했다. 이 와중에 장씨를 꾀어 가방을 운반하게 한 남편의 후배 조씨는 2005년 7월 한국에서 검거돼 재판과정에서 장씨의 결백을 증언했다. 조씨의 판결 내용은 그녀의 재판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인데도 대사관은 이 자료를 검찰로부터 받고도 마르티니크 현지 재판부와 검찰에 보내지도 않았다.
그러나 외교부 관계자는 “방송내용이 한쪽에 치우쳐 있다. 방송을 보면, 담당 영사가 보호와 지원 업무를 전혀 하지 않은 것처럼 들리는데 잘못이 있을 수는 있지만 전혀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라며 “마약소지 혐의 자체만으로 10년 이상의 중죄인데, 1년여만에 가석방돼 보호감찰을 받는 것 만으로도 한국대사관이 아무런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 2001년 중국내 한국인 사형집행, 2003년 김선일씨 피랍, 2005년 장미정씨…
* [장면 1] : 2001년 중국 내 한국인 마약사범 신아무개씨 사형집행 사건이 있었다. 당시 외교부는 우리나라 국민에 사형이 집행됐다는 사실조차 사전에 인지하지 못해 여론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중국 정부는 “신씨의 구속 이후 곧 한국대사관에 통지했고 중국 최고법원의 사형판결 이후 흑룡강성 외사판공실은 사형판결서를 주중 한국대사관 영사사무소로 송달했다”며 한국의 주장을 반박했지만, 주중 한국대사관은 보도자료를 통해 “대사관 및 선양사무소는 확인 결과 그런 문서를 받은 기록을 찾을 수 없다”면서 “전달받은 문서의 기술적인 의문 등 현재 관련사항을 철저히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외교부의 자체 점검과정에서 사전통보를 받은 것으로 전해져, 문서 확인에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대사관은 “김병권 영사가 지난달 29일~이달 1일 하얼빈 출장기간 중 사형된 신씨의 유골을 인수했으며, 주중대사관을 통해 가족에게 전달할 예정”이라며 “사형수의 경우 장기기증 희망시 본인의향, 가족서명·동의가 필요하나 신씨는 장기를 기증하지 않았다”고 확인했다. 뒤늦게야 우리 정부는 중국에 “사형집행 사실을 미리 통보하지 않았느냐”고 항의했지만, 중국은 사형 집행 통보를 우리에게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외교부도 이 사건에 대한 자체 감사 결과 △97년 9월 신씨 체포 이후 공정한 조사·재판 진행여부 확인 책무 소홀 △지난해 병사한 공범 정아무개(68)씨의 신원확인 처리 태만 △현지언론의 사형판결 보도에 대한 주중 공관들의 무관심 △문서접수 누락의 지연확인에 따른 혼선 초래 등의 많은 문제점을 노출시켰다고 인정하고, 외교관 5명에 대해 감봉 3개월~경고 등의 징계를 내렸다.
또 개선대책으로 총영사직이 없는 중소규모 공관의 차석 외교관에게 총영사직이나 수석 영사를 겸직토록 하고 문제가 된 주선양 영사사무소에 현지보조인력 10명을 급히 증원배치하는 등 긴급 처방을 내놓았다. 이밖에 △본부의 지휘·감독 강화 △영사업무 담당자 교육·훈련 강화 △영사업무를 마친 뒤 인사에서 희망지역 발령을 우선 검토하는 등 인사·수당 등에서의 각종 인센티브 제공 △법무부, 경찰청 등 국내 영사업무 관련 부서와의 협조체제 강화 △공관장 지휘체제 강화, 본부 보고체계 개선 등의 방안이 나왔다.
그럼에도 영사 업무에 대한 비판 여론이 계속되자, 2003년 7월29일 영사업무의 포괄적이고 종합적인 내용을 담은 ‘인터넷 영사 서비스’(e-Consular Service)를 제시했다. 이 안에는 수감자 및 범죄사건, 사고의 데이터베이스 확충 및 재외공관-본부-관계부처통합정보관리체제 구축 등이 담겨 있어 많은 기대를 모았다.
* [장면 2] : 2004년 6월 이라크에서 김선일씨가 무장납치단체에 납치·살해됐다. 당시 정부는 김씨가 잡힌 사실조차 AP통신이 비디오테이프를 공개할 때까지 사전에 알지 못했다. 뒤늦게 AP통신이 외교부에 김씨 실종 문의전화를 했는데도 담당 공무원은 “상부에 보고하거나 영사과·중동과에 확인하지 않고 무책임하게 지나쳐 화를 불었다. ‘24시간 내 파병 철회’만이 납치범들의 요구안이었기 때문에 제대로 된 구명협상 한번 해보지 못하는 무기력함을 보였고, 김씨는 공포속에서 죽어갔다.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론은 외교부를 집중 성토했다. 감사원은 “재외국민 안전보호조치가 태만했다”며 관계자 문책을 건의했다. 국회 `김선일 국정조사' 특위도 “김씨 피랍사건은 정부 외교안보 시스템의 총체적인 문제점을 드러낸 사례”라며 “정부가 피랍사실을 사전에 알지 못했다는 이유로 재외국민보호에 관한 책임이 면제되는 것은 아니며, 정부의 교민 안전관리와 정보입수 활동에 문제가 있었음을 인정할 수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냈다.
여론이 좋지 않고, 주변환경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이때도 외교부는 고 김선일씨 사건에 대한 백서를 만들어 “미흡했던 부분을 겸허히 수용해 자성의 계기로 삼고 향후 유사 사건 발생시 대응 교범으로 활용하기 위한 취지에서 발간키로 했다. 백서에는 △ 사건 경과와 외교부의 대응에 대한 객관적인 기술 △ 감사원 조사ㆍ국회 국정조사ㆍ언론의 지적사항 △ 이에 대한 외교부의 견해 △ 교훈과 향후 대책 등을 담았다.
얼마 전에도 외교부는 재외국민 보호와 영사 서비스 강화를 위한 영사인력 확충, 지난 97년 외환위기 이후 폐쇄했던 공관 22개를 재개설하는 등의 대책을 내놓았다. 또 해외에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즉각 출동할 수 있는 신속대응팀도 창설했다. 우리 국민의 해외 체류시 24시간 협조를 요청할 수 있는 영사콜센터도 가동 중에 있다.
◇ 영사 사무 개선 시급하다
중국에서 현지 대사관도 모른 상태에서 신아무개씨가 사형집행 된 일이나 김선일씨 납치·피랍사건, 이번 장미정씨 사건은 외교부의 영사업무가 얼마나 허술한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신씨와 장씨가 범죄를 저질렀다고 하지만, 자국민이 외국에서 극한 상황에 몰렸는데도 현지 공관에서 도움의 손길은커녕 실태파악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었고, 중국으로부터 받은 문건(신씨)과 ‘추적60분’에서와 같이 프랑스로 보낼 문건 관리조차 안한 것이다.
이외에 탈북자를 취재하던 프리랜서 사진작가 석재현씨는 1년 넘게 중국에서 감옥생활을 한 적이 있고, 2000년 영국에서 의문의 사고사를 당한 고 이경운씨나 최근 터키에서 주검으로 발견된 임지원씨의 경우 해당지역 한국대사관으로부터 어떠한 보호나 지원을 받지 못했다고 알려지고 있다. 실제 이경운군의 아버지 이영호씨는 언론 등을 통해 “주영 한국대사관이 사건 초기 진상규명을 외면하다 몇 차례 이 사건이 보도된 뒤에야 관심을 보였다”며 “하지만 대사관은 면피용으로 관심을 기울였을 뿐 사실확인조차 하지 않았다”며 수시로 불만을 표출했었다.
현지 교민과 자국민들을 보호하고 편의를 돕는 것은 재외공관의 가장 기본적인 업무다. 헌법 제2조 2항에는 ‘국가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재외국민을 보호할 의무를 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국민들은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로는 우선 헌법에 명시된 ‘재외국민 보호 의무’를 규정한 하위법률이 없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김선일씨 사건 이후 정치권에서는 재외국민을 보호할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2004년 이성권 한나라당 의원,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 김성곤 열린우리당 의원이 재외국민보호법을 제출했다.
◇ 외교부 영사 업무에 대한 인력 및 예산 지원 뒤따라야
영사 인력 및 예산의 확충도 시급하다. 외국에 나가는 국민들이 해마다 급증하면서 각종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있지만 영사인력은 크게 늘지 않는 등 오히려 이들의 업무는 늘어나는 추세다. 외교부에 따르면 2004년 기준 대국민 서비스 담당 영사인력은 270여명 정도다. 출입국사무소와 경찰 등 파견인력을 제외한 외교부 직원 236명 중 순수한 영사전담 직원은 50여명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정무, 경제, 총무 등의 일을 보면서 영사업무를 겸직하고 있다.
2004년 우리나라의 재외국민과 해외여행객 규모가 1400만명을 넘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해외 체류자 10만명 당 영사수는 1.9명 수준이다. 반면, 2004년 기준 미국의 영사인력은 6천명, 일본은 1540명으로 해외체류자 10만명 당 영사수는 미국 100명, 일본 11.8명이다.
외교부 내에선 영사가 3D업종, 한직이라는 인식 탓에 경험이 부족한 말단이 주로 자리를 메우면서 책임감을 갖고 국민을 보호하는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고질적인 문제점이 있다는 쓴소리도 나온다. 또 일부 대사관 직원들은 교민을 보호하고 돕기보다는 그들 위에 군림하려 하거나 본국에서 오는 고위층 손님 접대에만 신경을 쓰기도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인사는 “영사 업무의 개선을 위해서는 영사직에 대한 인식의 전환과 함께 영사 비중을 높이고 전문성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며 “경험 많은 현지인을 채용해 영사 업무를 보조하게 하는 방법도 좋은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영사 업무가 재외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직무라는 책임의식을 갖는 것은 물론이다. 권영길 의원실의 이승원 보좌관은 “영사 업무가 제자리걸음을 하는 이유는 인력과 예산 문제가 가장 크다. 재외국민 영사서비스 예산이 5억인데 실상 영사들의 활동비밖에 되지 않는다”며 “외교부 인력 확충과 함께 영사 전문 외교관이 투입되어야 하며, 하루 빨리 재외국민보호법이 제정돼 보호업무에 소홀한 영사들을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고 해결책을 제시했다.
◇ 외교통상부 홈페이지, 시민들의 분노 폭발
한편, 외교통상부 홈페이지(mofat.go.kr), ‘추적60분’ 시청자게시판 등에는 억울한 옥살이를 한 장씨를 당장 귀국시키고, 이번 사태의 책임자를 문책하라는 시민들의 분노가 빗발치고 있다. 공무원이라고 밝힌 강승주씨는 “보호받을 권리가 있는 국민들 보호하지 못한 이들은 공무원의 자질이 없다”며 “재외국민 보호를 소홀히 한 프랑스 한국대사관 담당 공무원들을 징계하고, 프랑스에 갇혀 있는 국민을 당장 데려오라”고 말했다. 백명주씨도 “관계자를 처벌해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하라”고 충고했다. 김윤씨는 “얼렁뚱땅 얼버무려 사건을 무마시키려 했던 프랑스대사관과 외교통상부 정말 한심하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며 “자기 일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이들에 대한 엄중한 문책이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와 정치권이 재외국민 보호를 등한시 하는 사이 누리꾼들은 장미정씨를 돕기 위한 카페 ‘장미정님’(cafe.daum.net/alwjdsla)을 만들어 다각적인 지원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미디어다음> 아고라에서도 장씨의 무료변론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이 한창이다.
<한겨레> 온라인뉴스팀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지난 26일 오후 ‘고 김선일 1주기 추모 및 자이툰부대 철수 촉구 반전행동‘ 집회를 마친 참가자들이 광화문까지 행진을 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 인터넷 뉴스 바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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