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법원이 한국 정부의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절차’(ISDS) 판정 취소신청을 각하하라는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의 요구를 기각했다. 취소신청을 받아 심리해 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중재판정부(PCA)는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1389억원(법률비용 포함)을 배상하라고 판결한 바 있다.
법무부는 19일 보도자료를 내 “엘리엇이 제기한 ISDS 판정 취소소송 각하 신청에 대해 영국 법원이 전날 오후 9시께(한국시간) 전부 기각 선고했다”고 밝혔다.
엘리엇은 지난 8월12일 “한국 정부가 제기한 중재 판정 취소소송 사유는 ‘관할’ 요건과 무관하고 승소 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하며 “구술심리 등 후속 절차 없이 취소소송을 각하해달라”고 신청했다.
한국 정부는 8월25일 반박 서면을 제출했고, 재판부는 최종적으로 엘리엇의 각하 신청을 전부 기각했다. 법무부는 “영국 법원이 한국 정부가 취소소송 이유로 꼽은 관할 문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해석에 관한 중요한 사안이고, 소송의 주요 쟁점 역시 구술심리를 거쳐 판단해야 할 문제이지 일방적 가정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영국 법원은 또 엘리엇의 취소소송 각하신청은 무리한 측면이 있으므로 엘리엇에게 한국 정부 쪽 소송비용의 50%에 해당하는 2만6500파운드(한화 약 4370만 원)를 지급토록 명령했다. 잔여 소송비용은 향후 소송 경과에 따라 지급주체를 다시 판단하기로 했다.
엘리엇은 2015년 삼성그룹 이재용 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박근혜 정부의 삼성물산 합병 개입’으로 손해를 봤다’며 2018년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절차를 제기했다. 중재판정부는 지난 6월20일 엘리엇 쪽 주장을 일부 인용해 한국 정부에 5359만 달러(약 690억원)를 배상하라고 판정했다. 지연이자와 법률비용 등을 포함하면 한국 정부가 지급해야 할 배상총액은 1389억원에 이른다.
이에 한국 정부는 엘리엇 사건이 한미 자유무역협정상 ‘성립 불가능’한 사건이라는 점을 들어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국제투자분쟁은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의 협정 위반 행위에 대해 제기하는 국제중재인데,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상업적 행위’일뿐 국가의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게 한국 정부의 입장이다.
이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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