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국내에도 슬슬 알려지기 시작한 행동주의 펀드는 단순 투자를 통해 수익을 추구하는 데 머무르지 않는다. 기업 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해 주주제안 등 여러 수준의 경영 개입에 나선다. 국내에 행동주의를 소개한 것은 1999년 타이거펀드를 시작으로 소버린, 엘리엇 등 외국계 펀드다. 행동주의 자체가 미국을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는 점에서 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동시에 외국계라는 이유로 행동주의 펀드는 ‘흡혈귀 해외자본’이라는 비판을 국내 일부 언론으로부터 상당히 받기도 했다.
흡혈귀 이미지 때문에 외국계 행동주의 펀드는 국내에서 활동하는데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또 다른 문제도 있었다. 국내 재벌과 재벌총수(지배주주)에 대한 낮은 이해도 탓에 기업가치 개선을 목표로 내놓는 의제들이 날카롭지 못했다. 예를 들면 엘리엇이 2018년 현대자동차를 대상으로 제안한 현대자동차와 현대모비스와의 합병이다. 당시 현대자동차그룹은 순환출자 해소를 위해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합병을 추진했는데 엘리엇의 방안은 생뚱맞다는 평가가 적지 않았다. 한국 사정에 밝은 토종 행동주의 펀드의 필요성이 부각된 것도 이즈음이다.
■ 행동주의 펀드? 인수합병 펀드?
국내 행동주의 펀드의 시초는 2006년 한국기업지배구조개선펀드(KCGF)다. 그 뒤 오랜 공백기를 거쳐 2018년 강성부펀드라 알려진 케이씨지아이(KCGI)가 등장한다. 토종 행동주의 펀드를 부활시킨 주역이며 한진칼에 개입하여 기업지배구조헌장 제정 등 일부 성과도 냈다. 한진칼 주식 보유 기간 동안(2019년 초~2022년 초) 주가도 올랐다.
그럼에도 조원태 한진 회장에 맞서 조현아·반도건설 등과 ‘제3자 주주연합’을 구성하여 경영권 분쟁을 벌이면서 강성부펀드가 인수합병 전문펀드인지 행동주의 펀드인지 혼란을 주기도 했다. 유사한 문제는 최근 에스엠(SM) 이수만 지배주주에 문제제기를 한 얼라인파트너스라는 행동주의 펀드 사례에서도 나타났다. 당시 이수만 쪽 변호사는 이성수(당시 에스엠 대표)·카카오·얼라인파트너스가 연합해 에스엠을 적대적 인수·합병하려 한다는 프레임을 제기했다. 미국에서도 행동주의 펀드가 인수합병 펀드 등과 암묵적으로 연합하는 듯 보이는 일이 종종 있다. 행동주의 펀드가 개입하면 얼마 후 인수합병 펀드가 공개 인수제의에 나선다든가, 인수합병 펀드가 한 비공개 인수제의를 이사회가 거절하면 갑자기 행동주의 펀드가 들어와 지분 매각을 요구하는 식이다. 지배주주 쪽에서는 이런 걸 빌미 삼아 행동주의 펀드를 향해 양의 탈을 쓴 늑대라고 공격한다.
그러나 이는 과도한 공격 내지 비난이라고 본다. 암묵적 협조를 했든 하지 않았든 간에 전략상 필요한 측면이 있다. 우선 행동주의 펀드가 기업가치를 개선하기 위한 과정에는 주주총회에서의 표 대결이 필요할 때가 적지 않다. 그런데 현재 국내재벌은 지배주주의 직접지분, 계열사 지분, 우호지분 등을 합치면 주주총회에서 행동주의 펀드가 표 대결에서 이기기는 하늘에 별 따기다. 어차피 주주총회에 가면 이길 텐데 지배주주가 굳이 행동주의 펀드와 대화를 통화 문제를 해결할 이유도 없다. 그냥 무시하면 그만이다. 그러기에 행동주의 펀드로선 지배주주에게 압박을 주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구사할 수밖에 없다.
두번째, 국내는 지배주주 지분과 경영권을 구분하지 않는 이상한 궤변이 넘치기 때문이다. 총수들이 가지고 있는 주식은 사유재산이다. 누구도 그것을 강제로 뺏자는 주장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경영진은 능력 있는 사람들이 경쟁을 통해 선택되는 것이다. 총수가 지분이 많으면 본인이 경영진이 되기 쉬울 따름이다. 경영권은 천부인권이 아니고 주주와 이사회의 선택일 뿐이다. 이 당연한 것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데에 행동주의 펀드가 필요하다. 기업가치에 해를 끼친 총수에 대해서 경영에서 물러나라는 주장을 하는데 주저할 필요 없고 이를 위해서 전략적 연합도 필요한 것이다. 도전하는 약자는 절박해야 하고 그 절박함 속에 연합도 이뤄지는 것이다.
■ 저평가의 핵심, 지배주주의 사익추구
최근 강성부펀드와 얼라인파트너스의 기업별 거버넌스 개선안은 토종 행동주의 펀드의 장점을 보여준다. 강성부펀드는 주주 서한을 통해 디비(DB)하이텍의 저평가 원인을 지배주주의 사적이익 추구로 보고 기업이미지를 실추시킨 김준기 창업회장은 퇴사해야한다고 제안했다. 또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에게는 현대엘리베이터 사내이사직 사임을 요구했는데 그 근거가 날카롭다. 현대아산, 현대무벡스, 에이블현대호텔앤리조트 등 여러 계열사 사내이사를 겸직하면서 지난 3년간 120억원의 보수를 받은 점, 본인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현대엘리베이터 주주들에게 피해를 준 점(관련 소송이 진행 중이다)을 강성부펀드는 짚었다.
얼라인파트너스는 지난해 8월 에스엠에 공개 주주 서한을 발송하고 에스엠이 이수만 개인이 100% 소유하고 있는 라이크기획과 음악자문 및 프로듀싱 계약을 맺은 것을 문제 삼았다. 에스엠 매출액 중 최대 6%를 인세로 냈는데 이를 에스엠 주주가치를 훼손하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국내 재벌의 전형적인 문제인 지배주주 개인이 소유한 회사로의 일감 몰아주기 거래를 정확히 짚어낸 것이다. 에스엠이 이러한 일감몰아주기 조기 종료를 검토하겠다고 발표한 날 주가는 9.5% 급등했다.
토종 행동주의 펀드들이 적절한 거버넌스 개선을 통해 주가를 급반등시켜주면 좋겠지만 사실 ‘만약 토종 행동주의 펀드 같은 잔소리꾼마저 없었다면’이라는 가정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거버넌스는 일종의 위험관리와 맞닿아 있는 이슈다. 위험은 잘 관리되면 티가 안 나지만 터지면 재앙이 된다.
한 예로 엘지(LG)화학은 엘지(LG)에너지솔루션 쪼개기상장 이슈가 터진 2021년 2월 이후 주가의 다운모멘템이 형성됐다. 2021년 2월5일 102만8000원은 아련한 추억이고 최근 50만원대이다. 카카오페이는 2021년 11월 상장 직후 경영진들이 집단적 스톡옵션 행사 후 매각을 한 이른바 먹튀사건으로 2021년 11월29일 최고 23만8500원을 찍은 후 현재 4만원대로 뚝 떨어졌다. 남양유업도 지배주주인 홍원식 회장이 사모펀드인 한앤컴퍼니에 매각 발표를 한 2021년 5월 이후 주가가 상승세를 타서 2021년 7월1일 76만원까지 갔으나 이후 매각 관련 소송이 이어지고 홍 회장이 물러나지 않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현재 40만원대에 형성돼 있다.
반면 에스엠은 경영권 경쟁이 있고 이수만이 지분을 정리한 2023년 3월 이후 주가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모습이다. 카카오와 하이브가 인수경쟁을 벌이던 지난 3월에 주가가 튄 면이 있지만 그걸 고려해도 대세 상승을 이어가 12만~13만원대다.
한국 주식시장에는 재벌을 잘 알고 총수에게 집요하게 문제제기할 행동주의 펀드가 필요하다. 아름다운 대화와 형식적인 이에스지(ESG, 환경·사회·지배구조) 정책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해결될 거였으면 진즉에 한국 주식 투자자들은 행복했을 것이다.
이창민 한양대 교수(경영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