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두 거대 사모펀드 엘리엇과 메이슨이 우리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삼성물산 합병 관련 투자자-국가분쟁해결(ISDS) 소송을 비롯해 우리 정부가 피소된 ISDS 사건은 2022년 기준 총 10건이다. 하지만 지난 50여년간 국제 무역투자협정에서 선진국 금융투자자본이 막강한 위세를 휘둘러온 이 ISDS 제도는 ”이제 폐기·개혁하자”는 흐름이 미국에서조차 이미 일어나고 있다. 최근 세계무역기구(WTO)의 투자원활화협정 협상에서도 민감한 투자분쟁 제도는 협의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고, 뉴질랜드·호주 등은 ISDS 협정에서 이탈하는 등 ’ISDS 국제 투자체제’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2022년 6월에 발간한 ‘2022년 세계투자보고서’에 따르면 전세계적으로 ISDS 분쟁은 1966년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 창설 이래 총 1190건(누적)이다. 전세계 대다수 무역투자협정에 ISDS가 포함돼 있어 총 130개 국가가 해외 투자자들로부터 소송을 제기당했다. ISDS는 그동안 개도국을 중심으로 “선진국 자본이 절대적인 교섭력 우위에 있고, 상대 국가의 사법체계를 우회하고 정책주권 행사를 침해하는 독소조항”이라는 비판이 일어왔다. 그런데 2018년께부터 국제사회에서 ISDS를 폐기·개혁하자는 흐름이 크게 일어나고 있고, 이처럼 격동기를 맞자 유엔 상거래법위원회(UNCITRAL)도 ISDS 개혁을 공식 논의 중이다.
흥미롭게도 ‘ISDS로부터의 이탈’ 흐름은 미국이 주도하고 있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대체해 2018년에 새로 발효된 미국-멕시코-캐나다무역협정(USMCA)에서 미국은 전격적으로 ISDS 조항 삭제를 요구했다. 다만 캐나다·멕시코가 삭제에 반대하자 소송에 활용할 수 있는 범위를 원유·천연가스 등 특정한 정부계약으로 한정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당시 미국 무역통상정책에서 투자자분쟁 정책방향이 획기적으로 바뀐 것으로 평가된다”고 해석했다.
ISDS는 미국-멕시코-캐나다무역협정(USMCA)에서는 효력이 미약해졌고,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서는 아예 삭제됐으며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동반자협정(CPTPP)에서는 소송 범위를 엄격하게 제한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에서는 여러 참여국이 ISDS 도입 금지를 요구해 관철시켰고,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동반자협정에서도 ISDS는 활용 범위를 대폭 축소해 공중보건·공공교육 관련 정부규제는 소송을 할 수 없도록 명시했다. 특히 이 협정에서 뉴질랜드는 자국의 공공정책 집행을 보장받기 위해 호주 등 5개국과 개별 부속서한을 맺어 ISDS 조항 전체를 유예시켰다. 호주도 미국과 맺은 양자 자유무역협정에서 ISDS 조항을 거부해 관철시켰다. 무역투자협정에서 개별 국가가 ISDS 조항을 제외시키고, 당사국들도 이를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판도가 바뀌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최근 ‘ISDS 무력화’가 큰 흐름을 형성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양자 투자보장협정(BIT)이나 개정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총 80여개 협정에 ISDS 조항을 두고 있다. 그동안 론스타·엘리엇 등 미국 헷지펀드로부터 소송 분쟁에 휘말려온 우리 정부도 ISDS의 폐지 혹은 개혁을 요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재민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산업통상자원부 소속 무역위원회 위원장)는 최근에 한 대중 강연에서 “기존 통상·투자협정에는 건강·보건 등 국가의 정당한 정책 행사를 보호하는 장치 도입이 크게 미흡했다. 그래서 요즘 각국마다 국제투자협정을 명백하게 위반하는데도 ‘국가안보·경제안보’로 방향을 틀어 자국 산업·기업을 다양하게 보호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조계완 선임기자
kyew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