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 실업급여 신청 창구. 연합뉴스
정부·여당이 월 180여만원 수준인 실업급여 하한액을 낮추거나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하면서 개최한 공청회에서 ‘실업급여로 해외여행 간다’ ‘명품 선글라스나 옷을 산다’ 등 청년·여성 구직자와 계약직 노동자를 콕 집어 폄훼하는 발언을 해 구직자들의 반발이 나온다.
국민의힘 노동개혁특별위원회는 지난 12일 국회에서 ‘실업급여 제도개선 공청회’ 열었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 의장은 공청회 직후 브리핑에서 “실업급여가 악용돼 달콤한 보너스라는 뜻의 ‘시럽(syrup)급여’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고 밝혔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이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실업급여 제도개선 공청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공청회에서 구직자에 대한 부정적 발언이 이어져 논란이 됐다. 조현주 고용노동부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실업급여 담당자는 “퇴직하면 퇴사 처리되기 전에 실업급여를 신청하러 사람들이 센터를 방문한다. 웃으면서. 웃으면서 방문한다. 어두운 얼굴로 오시는 분들은 드물다”라고 말했다. 조 담당자는 “(어두운 표정으로 오는) 그런 분들은 장기간 근무하고 갑자기 실업을 당해서 저희 고용보험이 생긴 목적에 맞는, 그런 남자분들 같은 경우”라고 했다.
조 담당자는 “여자분들, 계약기간 만료, 젊은 청년들은 쉬겠다고 온다”며 “실업급여 받는 분 중에 해외여행 간다. 자기 돈으로 일했을 때 살 수 없는 샤넬 선글라스 사든지 옷을 사든지 이런 식으로 즐기고 있다”고 했다. 박대출 정책위 의장은 이날 ‘정책이 힘이다-국민의힘이 나아갈 길’ 강연회에서 조 담당자의 발언을 다시 언급하기도 했다.
다만 조 담당자는 “저희도 최선의 노력으로 취업하라고 도와드리고 싶은데 (일자리 소개를 ) 본인들 스스로 거부하니까 많이 속상한 경우도 많다”며 “정말로 필요한 제도인데 필요한분한테 정말로 도움이 되길 바란다. 없어지기 보다는 좀 오래오래 있길 바란다”고 발언을 마무리했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이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실업급여 제도개선 공청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13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부적절한 발언이라는 비판이 터져 나왔다. 누리꾼들은 해당 발언이 현실을 모르거나 호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실업급여를 노려가며 몇 달 단위로 일하고 관둔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누가 이력·경력 생각 안 하고 그렇게 하겠느냐” “요즘 젊은 애들이 실업급여를 많이 받는 것은, 사용자들이 이들을 뽑아 필요한 기간만 노동력을 쓰고 정규직 전환을 시켜주지 않기 때문” “실업급여를 한 500만원 주는 것도 아니면서 노동자만, 여성만 후려친다” 등의 지적이 나왔다. “실업급여를 나라에서 공짜로 주는 것도 아니고 내가 일해서 내는 고용보험이 근간”이라며 구직자가 실업급여를 받는 것은 ‘당연한 권리’라는 의견도 나왔다.
신상아 서울여성노동자회 회장은 <한겨레>에 “실업급여는 노동자가 실업을 대비해 고용보험을 들어서 받는 돈이다. 무료로 받는 돈이 아니다”라며 “그 돈으로 뭘 사든 그것은 개인의 자유의지이며, 실업 급여로 해외여행 가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 그렇게 호도하는 것은 실업급여 취지 자체를 폄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현우 청년유니온 사무처장은 “나도 실업급여를 받으러 가봤지만, 그 상황에서 웃으며 실업급여를 받으러 온다는 식으로 말하는 게 이해가 안 된다. 실직했는데 얼굴이 밝을 수가 있겠느냐”고 했다. 나 사무처장은 “정부의 실업급여 개편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은 실업급여를 많이 받는 사람이 아니라 하한선에 있는 사람들”이라며 “원래 노동시장에서 받던 소득도 낮은 사람들이다. 그들에 대한 소득 보호 장치를 없애버리면서 해외여행 운운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했다.
실업급여는 고용보험 적용 사업장에서 비자발적 실직을 당한 노동자들의 원활한 재취업을 돕기 위해 마련된 제도다. 노동자가 평소 월급에서 공제하는 방식으로 고용보험료를 회사와 나눠 부담한다. 실직 전 18개월 중 180일 이상 근무하면, 평균임금의 60%(상한액 1일 6만6천원·월 198만원)를 연령과 고용보험 가입 기간에 따라 4~9개월간 받는다. 정부·여당은 최저임금의 80%로 정해져 있는 하한액(1일 6만1568원·월 184만7040원)을 60%로 낮추거나 폐지하자고 주장한다.
야당과 전문가들은 실업급여 부정 수급은 막아야 하지만, 제도 자체에 섣부르게 칼을 댈 경우 저임금 노동자들을 위한 사회안전망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한다. 현재도 고용노동부는 정기적으로 부정 수급 여부를 점검해 부정 수급자가 형사처벌을 받도록 제도를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이주빈 기자
ye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