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이제그만 공통투쟁’과 민주노총 금속노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지난 25일 저녁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불법파견 사용자 엄정 처벌과 조속한 대법원 판결을 요구하면 야간문화제를 하려고 하자, 경찰이 제지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전날 경찰이 문화제와 노숙 농성을 ‘변칙 집회’로 보고 강제 해산에 나서면서 위법한 공권력 집행이라는 비판을 자초하고 있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시위로 인한 소음과 교통체증을 ‘무형의 폭력’이라고도 규정했는데, 비폭력 집회를 ‘무형의 폭력 집회’라는 개념으로 싸잡아 강경 대응에 나서려는 포석으로 읽힌다. 윤석열 대통령의 ‘엄정 대응’ 지시 이후 달라진 경찰 대응 기조에 위법 소지가 커지자 경찰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26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은 전날 대법원 정문 앞 금속노조와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 등 노동자들의 투쟁문화제와 노숙농성을 직접 해산시켰다. 여러 차례 해산명령을 내린 뒤 참가자들을 하나둘씩 끌어냈다.
경찰의 이런 직접해산 조치는 대법원 판결에 반한다. 대법원은 지난 2021년 “미신고 집회라는 이유만으로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해산할 수 없다”며 “다른 사람의 법익이나 공공의 안녕질서에 ‘명백하게 위험이 초래된 경우’에 한해 해산을 명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공공의 안녕질서에 ‘명백하게 위험이 초래된 경우’라 함은 방화·재물손괴 등 폭동 수준의 상태를 뜻한다. 전날 집회에서 폭력 행위가 없었다는 점은 경찰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경찰은 전날 행사가 문화제를 가장한 불법 집회이고, 대법원 앞 100m 이내는 집회 불가 지역이라 강제 조치가 불가피했다는 입장이다. 경찰 관계자는 “퇴근 시간대에, 집회 금지장소에서, 판결에 영향을 주려고 집회를 했다는 점 때문에 ‘명백한 위험이 초래된 경우’라고 봤다”고 말했다. 대법원 앞에서 구호를 외친 행위를 폭동 수준의 행위로 봤다는 뜻이다.
김선휴 변호사는 “집회의 강제 해산은 집회의 자유를 굉장히 강력한 형태로 규제하는 것이다”라며 “대통령 발언 이후 경찰이 ‘정권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판단하는 것 같다. 판례에 비춰보면 과도한 법 집행이다. 이제 시작인 것 같아 매우 우려된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경찰의 행위가 위법하다고 보고 행정소송을 검토 중이다. 경찰 고위관계자도 <한겨레>에 “(법적 근거가 약한 상황에서) 강경 진압 일변도로 나가다가 자칫 사고라도 나면 모든 책임을 경찰이 떠안게 될 텐데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경찰의 위태로운 법 해석은 경찰청장의 발언에도 고스란히 녹아 있다. 윤희근 청장은 이틀간 전국 경찰에게 폭력 행위가 발생하지 않은 평화적 집회에 대해서도 강력한 공권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전날 서한문에서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다고 불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소음과 교통체증은 경우에 따라 더 큰 상처와 피해”라고 한 데 이어, 26일 화상회의에서도 “국민의 고통과 불편”을 강조하며 “불법 집회·시위 등에 대해 엄정하게 대처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폭력 집회’인 경우에만 경찰의 물리력 행사가 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해, ‘비폭력 집회’를 ‘무형의 폭력 집회’로 재규정하려는 뜻으로 보인다.
전날 경찰의 문화제 원천봉쇄 및 강제해산이 ‘자의적 행정’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지난 3년간 20여 차례 대법원 앞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문화제와 노숙농성이 열렸는데, 경찰은 한 번도 집회로 판단하지 않았다. 대통령 말 한마디에 ‘하루아침에’ 경찰의 판단이 바뀐 셈이다.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 관계자는 “경찰이 그제(24일)부터 ‘오래전부터 대법원 앞에서 농성하고 있는 것 안다. 그런데 지금은 분위기가 아니다. 청장 지시도 있고, 대통령 발언도 있어서 지난번처럼 조율해서 진행하기 어렵다’며 금지 통보를 해왔다”고 전했다. 양홍석 변호사는 “동일한 형식과 내용의 문화제이고 그간 평화적으로 진행돼 법 집행을 하지 않았다고 하면, 갑자기 집회로 보는 판단 자체가 자의적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1인 시위에 대해서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금속노조와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 등 노동자들은 26일 오전 8시 30분부터 대법원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 1인 시위는 사전신고 의무가 없다. 경찰은 여러 명이 개별적으로 진행해도 각자 거리가 70m 이하라면 1인 시위가 아닌 불법 집회라며 해산을 요구했다.
김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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