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가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공공질서 확립과 국민 권익 보호를 위한 당정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와 여당이 ‘불법 전력’이 있는 단체의 집회·시위를 제한하겠다는 방침을 공식화하고, 경찰은 6년 만에 불법 집회 강제해산 훈련을 하기로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건설노조)의 노숙집회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엄정한 법 집행’을 주문한 지 하루 만에 당정이 본격 행동에 나서는 셈이다. 정부와 여당은 현행법을 필요에 맞게 적극적으로 해석해 집회를 제한하겠다는 방침인데, ‘신고제’인 집회·시위를 사실상 ‘허가제’처럼 운영하겠다는 뜻이어서 “권위주의 정부로의 퇴행”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24일 국회에서 열린 ‘공공질서 확립과 국민 권익 보호를 위한 당정협의회’를 마친 뒤 “앞으로 집회 신고 단계에서부터 철저히 대응하겠다”며 “불법 전력이 있는 단체가 이번 (건설노조) 집회같이 타인의 법익이나 공공 안전질서에 직접적으로 위협을 끼칠 것이 명백한 집회·시위에 한해서는 제한하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출퇴근 시간대 주요 도심의 도로상 집회·시위와 관련해서도 “(당정협의에서) 신고 단계에서 제한할 수밖에 없다고 의견이 모아졌다”고 말했다.
사실상 ‘집회 허가제’ 아니냐는 지적에 국민의힘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5조’ 집회 및 시위의 금지 조항을 꺼내 들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불법으로 규정한 최근 건설노조 집회는 집시법이 금지하도록 한 폭력 집회와는 상당히 동떨어져 있다. 집시법은 ‘집단적인 폭행, 협박, 손괴, 방화 등으로 공공의 안녕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끼칠 것이 명백한 집회·시위’에 한해 경찰이 사전 금지 통고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폭력이 수반된 폭동 수준에 가까운 집회·시위가 열릴 것으로 예상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건설노조 집회는 소음과 도로 점거로 논란은 있었지만 비폭력 집회로 진행됐기 때문에 경찰도 현장에서 직접 해산 등의 강경 진압을 할 수 없었다.
출퇴근 시간대 주요 도로에서 열리는 집회·시위를 제한한다는 방침도 ‘자의적 법 집행’ 소지가 있다. 현행 집시법엔 집회 금지·제한 근거에 ‘시간대’가 없지만, 경찰은 이미 교통 방해 등을 근거(집시법 12조)로 평일 대규모 집회가 신고될 경우 야간집회를 제한하고 있다. 당정이 강한 의지를 밝혔기 때문에 경찰의 자의적 금지 통고가 더 활성화될 우려가 크다.
경찰은 통상 오전 10시 이전, 오후 5시 이후를 출퇴근 시간대로 본다. 경찰이 임의로 정한 기준이다. 최근 건설노조 집회 역시 주최 쪽은 16~17일에 걸쳐 이틀간 집회를 진행한다고 신고했으나, 경찰은 이틀 모두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만 집회를 열 수 있다고 부분 제한 통고했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내규나 지침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출퇴근 시간대에 교통 방해가 될 수 있기에 오전 6~10시, 오후 5~11시 평일 대규모 집회는 제한한다”고 말했다. 박한희 변호사(희망을만드는법)는 “출퇴근 시간대 집회를 금지하는 조항은 1963년 박정희 정권 때 집시법 제정 당시 있었다가 1973년 법 개정이 되면서 빠진 조항”이라며 “이를 되살린다는 취지는 사실상 유신시대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라고 했다.
당정은 이밖에도 이날 △집회·시위 소음 기준 강화 △집회·시위 대응에 대해 경찰의 공권력 사용을 위축시킨 매뉴얼 개선 △소송 지원 등 경찰 면책 지원 확대 등을 논의했다.
대통령과 여당의 집회 강경 대응 드라이브에 경찰도 ‘태세 전환’에 나섰다. 경찰청 경비국은 25일부터 다음달 6일까지 집회·시위 강제 해산 및 행위자 검거에 방점을 둔 훈련을 진행하기로 했다. 지난 22일 경비국장 주재로 열린 회의 직후 경찰 내부에서 △해산 명령 △방송장비 일시 보관 △고착관리(집회 장소 이탈 제한) △강제 해산 및 검거 등 순서로 훈련을 진행한다는 문건이 작성돼 전파됐다. “이번 기회에 모든 기동대원의 정신 재무장이 반드시 필요하다”, “무더운 날씨가 이어지고 있으나, 기동부대 역량 강화 측면에서 강도 높은 훈련을 추진할 것”, “현장활력소(내부망)·블라인드 등을 통한 직원들의 불만 및 비난은 감수할 것” 등의 내용도 담겨 있었다.
시민사회에서는 당정의 발상이 “과거 권위주의 정부로 퇴행”이라고 비판했다. 참여연대는 이날 성명을 내어 “민주주의의 근본이 되는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제약하고 헌법이 금지한 집회 시위의 허가제를 도입하겠다는 위헌적 입법을 추진하겠다는 당정의 발상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며 “정부에 반대하는 어떠한 집회 시위도 불법으로 규정했던 1980년대 권위주의 정부로 회귀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도 “노숙 형식의 집회를 할지, 춤을 추는 집회를 할지 모두 집회 주최자의 몫으로, 집회의 자유는 집회의 시간, 장소, 방법과 목적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라며 “야간 집회·시위 금지 추진 등 집회의 자유를 과거로 돌리려는 시도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박지영 기자
jyp@hani.co.kr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 윤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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