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 1139채를 보유하다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고 사망한 일명 '빌라왕' 김모씨 사건 피해 임차인들이 지난달 27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국토교통부 앞에서 피해 상황을 호소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무자본 갭투자 전세사기로 수많은 피해자를 낳고 있는 ‘빌라왕’들의 배후로 지목된 분양컨설팅업체 대표 신아무개씨가 13일 구속됐다. 경찰은 보증금 80억원을 가로챈 혐의로 신씨를 포함한 78명을 검거한 가운데, 신씨가 내세운 다수의 ‘바지 빌라왕’들을 대상으로 수사를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는 지난 2017년 7월부터 2020년 9월까지 서울 강서구와 양천구, 인천광역시 등 주택 628채를 사들이면서 임차인 37명으로부터 보증금 80억원을 가로챈 혐의로 신씨를 포함한 부동산 분양업자·임대사업자·공인중개사 등 78명을 검거했다고 이날 밝혔다. 서울중앙지법 김상우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신씨에 대해 “증거인멸 및 도망할 염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경찰 조사 결과, 매물 물색과 세입자 모집 등 역할을 나눈 일당은 다수의 전세사기처럼 ‘동시진행’ 수법을 썼다. 전셋값을 부풀려 집값과 키를 맞춘 뒤, 세입자가 낸 보증금으로 빌라 등 주택 분양대금을 치르는 수법이다. 전형적인 ‘무자본 갭투자’ 방식으로, 세입자를 들인 뒤 집주인 명의를 바지 집주인에게 넘기면 끝이 난다. 이때 바지 집주인은 명의를 넘겨받으면서 수수료를 받는다. 이후 전세계약이 끝날 때 전셋값이 오르면 보증금을 돌려주고도 이익이 남지만, 떨어지면 세입자만 고스란히 피해를 본다.
경찰은 애초에 주택 628채를 보유한 ‘바지 빌라왕’ 김아무개씨를 수사하며 계좌내역을 살펴보다가 배후에 신씨가 있다는 점을 특정했다. 신씨 역시 부동산 분양업자‧중개사 등과 함께 별도의 자본 없이 임대사업자인 김아무개씨 명의로 주택 여러채를 매수하며 전세계약을 체결한 뒤 수수료를 나눠 가졌다. 이들은 분양·컨설팅 수수료 명목으로 한건당 수백만~수천만원씩 챙겨 모두 8억원의 불법 수익을 올렸다.
경찰은 압수수색 등으로 신씨가 김씨 외에도 여러 바지 빌라왕을 내세워 배후에서 관여했다는 점도 확인했다. 경찰은 강서구와 양천구 일대에 신축빌라와 오피스텔 약 240채를 사들여 세를 놓다가 지난해 제주에서 숨진 빌라왕 정아무개씨 뒤에도 신씨가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 경찰 관계자는 “기존 사건을 수사하다 정씨까지 연관된 것까지 확인한 상태”라며 “정씨 사건은 2차 수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전세사기를 예방하려면 세입자들이 전세계약서를 작성할 때 집주인이 변경될 경우 즉시 세입자에게 통지하고 주택도시보증공사(HUG·허그) 등의 전세 보증금 반환보증보험 가입이 불가능한 경우 ‘전세계약을 취소한다’는 내용 등을 특약란에 기재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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