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전경련에서 전세보증금 피해 임차인 설명회가 열리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그렇게나 세금이 많이 밀린 사람이 어떻게 집을 1천채 넘게 살 수 있었던 건가요? 정부는 전세 사기가 벌어진 데 책임이 없습니까?”
10일 국토교통부가 서울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연 ‘전세사기 피해 임차인 설명회’는 피해자들의 서러움과 분노로 가득 찼다. 지난해 10월 숨진 이른바 ‘빌라왕’ 김아무개씨는 종합부동산세 등을 60억원 넘게 체납했는데도 주택 1139채를 보유할 수 있었다. 피해자들은 현행 법·제도의 허점이 전세사기의 배경이 됐다며 정부의 신속한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인천 미추홀구에 사는 한 피해자는 전세계약 체결 전에 임대인이 ‘악성임대인’인지 알 수 없었던 점을 토로했다. “계약 전에 세입자가 확인해야 할 것들을 전부 꼼꼼히 확인했고 등기도 깨끗했다. 하지만 계약 뒤 보증보험 가입 절차를 밟게 돼서야 임대인이 ‘블랙리스트’라는 것을 알게 됐고, 주택도시보증공사(허그)로부터 가입을 거절당했다. 집주인이 블랙리스트란 것을 제가 도대체 어떻게 알 수 있었겠나.”
전세사기를 당하고 울며 겨자먹기로 현재 살고 있는 전셋집을 경매에서 낙찰받음으로써 ‘무주택자’에게만 주어지는 청약 혜택 등이 사라지는 문제도 거론됐다. 한 피해자는 “당장이라도 벗어나고 싶은 집을 억지로 경매에서 낙찰받아 되팔고 보증금의 일부만 회수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이 때문에 주택 소유 이력이 생겨 이후 대출이나 청약에서 혜택이 사라지는 점은 부당하다”고 했다.
설명회에 참석한 이원재 국토부 1차관과 김효정 국토부 주택정책관, 주택도시보증공사 관계자들은 피해자들에게 제도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임대차 계약 전 단계를 검토해 전세사기 종합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정부는 지난해 9월 ‘전세사기 피해 방지방안’을 이미 내놓은 바 있다.
이번에 발표될 대책에는 임대인이 사망한 경우 상속인이 확정되기 전에도 임차권 등기 절차를 가능하게 하는 방안이 담길 전망이다. 또 피해를 당한 임차인이 수백만원의 취득세를 감당해야 하는 상속대위등기 절차를 생략하게 하는 등의 제도 개선안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서울 강서구 전세사기 피해지원센터에 이어 이달 안에 인천시에도 피해지원센터를 설치할 예정이다.
정부는 이날 설명회에서 검토 중인 제도 개선 내용을 설명했지만, 피해자들은 “아직도 정부가 하는 말은 대부분 검토 중, 추진 중, 예정 중이냐”며 거세게 항의하기도 했다. 한 피해자는 “이미 이리 뛰고 저리 뛰어 알고 있는 경매 절차 설명을 듣겠다고 이 설명회에 온 것이 아니다. 새로운 대책이 하나도 없지 않냐”며 울음을 터뜨렸다.
최하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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